왜 지금, 공공이 다시 주택 공급의 중심에 서야 하는가
주택 문제는 통계로 설명되지만, 체감은 일상에서 발생한다. 전·월세 불안, 반복되는 주거 이동, 미래 계획의 유예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이재명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 특히 공공주택 비중 강화를 부동산 정책의 핵심으로 설정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한국의 주택 시장은 민간 주도 공급과 자산 논리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 공급이 위축될 때 가격은 급격히 상승했고, 그 부담은 항상 무주택자와 취약계층에게 먼저 전가됐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규제 강화나 금융 조정만으로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 공공이 직접 공급에 개입하는 것은 이념적 선택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다.
대규모이면서 지속적인 공급은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준다. 주택은 희소한 투기 자산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고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메시지다.
공공임대 비중 확대: ‘복지 주택’을 넘어 보편적 주거 인프라로
공공임대주택은 오랫동안 특정 계층을 위한 보조적 주거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1인 가구 증가, 비혼과 고령화,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주거 불안은 더 이상 일부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임대는 이제 사회 전체의 위험을 완화하는 주거 안전망에 가깝다.
이재명 정부가 공공임대 비중 확대를 분명히 한 것은 주거를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 다루겠다는 정책적 판단이다. 장기 거주가 가능하고 임대료 변동 위험이 낮은 주택을 일정 규모 이상 확보하지 않으면, 주거 불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과 질의 균형이다. 공공임대가 ‘차선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입지, 주거 면적, 생활 편의, 공동체 환경까지 포함한 존엄한 주거 기준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어떻게 짓느냐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한다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주택 공급은 단순한 물량 정책이 아니다. 주택의 위치와 공급 방식은 도시의 구조를 장기적으로 고정시킨다. 공공주택이 외곽에만 집중될 경우, 취약계층을 도시의 변두리로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공공청사 부지, 유휴 공공 토지, 도심 내 활용 가능한 공간을 주택 공급 자원으로 검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거는 교통, 일자리, 교육, 의료와 분리될 수 없다. 직주근접이 가능한 공공주택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기회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정책 수단이다.
공공 주도 공급은 단기적인 시장 대응이 아니라, 도시의 장기적 균형과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는 일이다.
강한 공급 정책일수록, 약자를 향한 설계는 더 섬세해야 한다
공공주택 확대가 자동으로 정의로운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재개발과 정비 과정에서 기존 거주민이 밀려나는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돼 왔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이 강하게 개입할수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는 더욱 정교해야 한다.
원주민 재정착, 고령자와 저소득 임차인의 주거 연속성 보장, 생활권 유지 없는 공급 확대는 정책의 신뢰를 훼손한다. 공공주택 정책의 성패는 속도나 숫자가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구조를 설계했는가에 달려 있다.
주택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늘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며, 그 기반 위에서 도시는 비로소 지속 가능해진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명재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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