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모순덩어리 세상에서 안진진이 선택한 모순

입력 2025-12-22 10:00
수정 2025-12-24 17:21
1998년에 발간된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은 100만 부를 기록한 후 지금도 종합베스트셀러 20위권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 개정판을 낸 이래 100쇄를 돌파하며 계속 각광받는 일은 극히 드문 현상이다.

1955년생인 양귀자 작가는 1980~19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한 문인으로 <원미동 사람들>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모순>까지 연이어 세 권을 밀리언셀러에 진입시킨 전설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모순>이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다. 한 세대 전에 발간한 <모순>이 어떻게 이 시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억센 엄마와 우아한 이모 <모순>의 주인공 25세 안진진은 오늘의 젊은 세대와 다름없는 아픔과 고민을 안고 있다. 안진진은 힘든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휴학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나영규와 김장우를 동시에 만나는 중이다. 안진진의 어머니는 쌍둥이로 태어났고, 자매는 똑같은 환경에서 살다가 25세에 결혼했다. 이후 자매는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걷는다.

알코올의존자로 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집을 나가자 안진진의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하며 점점 억센 아줌마로 변모한다. 안진진의 이모는 멋진 저택에서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우아한 삶을 영위한다. 어린 시절 안진진은 부끄러운 엄마 대신 세련된 이모를 학교로 부르는 깜찍한 일도 벌인다.

쌍둥이 자매의 자녀들도 극명하게 갈린다. 안진진은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두 번 가출했고, 동생 진모는 조무래기 부하 몇몇을 거느린 어설픈 조폭이 됐다. 이모의 두 자녀는 해외로 유학 가서 좋은 성적을 내며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한다.

안진진은 대학으로 돌아가기보다 두 남자를 만나며 결혼을 꿈꾼다. 가난한 사진작가 김장우, 유복한 집안에다 좋은 회사에 다니는 나영규, 이 둘은 데이트 스타일도 완전 다르다. 아무 계획 없이 고물 자동차를 끌고 나타나는 김장우와 달리 맛집부터 힘든 티켓 구매까지 매사 철저한 나영규, 안진진은 이상하게도 김장우에게 끌린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한 안진진은 나영규에게 집안 사정을 소상히 말하면서도 김장우에게는 ‘그가 품고 있는 나에 대한 사랑의 부피가 감소 될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수시로 가출하는 아버지는 돌아오면 행패를 부리고 또다시 집을 나간다. 동생 진모는 좋아하는 여자 때문에 싸움을 벌이다 살인미수라는 죄목으로 감옥에 간다. 어머니는 장사도 작파하고 피해자를 만나는 등 아들 구하기에 나선다.

모진 풍파 속에서 점점 강해지는 엄마를 보며 안진진은 이모의 우아한 삶을 동경한다. 중풍에다 치매까지 걸린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는 더 힘차게 달린다. 여기저기가 아프다는 이모를 엄마는 응석에다 늘어진 팔자여서 그렇다고 힐난하지만, 이모의 마음이 병들어가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두 자녀가 유학에서 돌아오지 않는 데다 딸이 서양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통보를 받자 이모는 결국 삶의 끈을 놓고 만다. 무덤 속 평온을 선택엄마와 이모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이모를 동경해온 안진진은 ‘김장우의 사랑이냐, 나영규의 안정이냐’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안진진은 결국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다. 이모부를 닮은 나영규와 결혼하며 이모가 그토록 못 견뎌 했던 ‘무덤 속 평온’ 쪽에 선 것이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라고 읊조리며.

안진진을 둘러싼 환경과 의외의 선택으로 많은 생각을 불러오는 <모순>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는다는 독자가 많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같은 가슴 두드리는 문장을 음미하느라 다시 책을 들게 된다는 독후감도 이어진다.

안진진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하며 <모순>을 읽다 보면 모순투성이인 삶을 이해하는 눈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