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배송’에 잘못 납품했다가 회사는 파산하고 집까지 팔았죠. 그런데 재기한 뒤에도 다시 쿠팡 ‘판매자로켓’에 물건을 넣고 있습니다.”
생활용품 제조·판매 사업을 하는 지인 A씨의 말이다. 그는 쿠팡의 무리한 단가 후려치기와 각종 수수료에 시달리다가 2022년 도산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공장을 넘겼지만, 재기 후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쿠팡이었다.
A씨는 다른 쇼핑 플랫폼에선 쿠팡만큼 매출이 나오지 않기에 쿠팡이 누구보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쿠팡 개인정보 유출사태로 매출이 줄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쿠팡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강도 높은 제재 검토에 나섰다. 정치권에선 수천억원에서 조단위 과징금은 물론 긴급 영업정지 얘기까지 나온다. 여론도 싸늘하다. ‘탈팡’(쿠팡 탈퇴) 행렬도 그칠 줄 모른다. 국민적 공분을 샀기에 마땅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데엔 큰 이견이 없다.
소비자에겐 대체재가 있다. 로켓배송이 멈추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네이버쇼핑과 컬리, 쓱닷컴을 활용할 수 있다. 쿠팡 탈퇴가 어렵다고 하지만 조금만 품을 들이면 ‘플랫폼 이민’도 가능하다. 정부는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의 탈퇴를 돕기로 했다.
문제는 쿠팡이라는 거대 플랫폼에 생계를 건 ‘을(乙) 중의 을’ 공급자들이다. 대형 유통회사에도 쿠팡 플랫폼은 큰 존재지만 소상공인들에겐 절대적이다. 납품 중인 업체만 23만 개(명)에 달하고, 이 중 80%가 중소상공인이다. 쿠팡을 통해 올리는 매출만 연 9조원이 넘는다.
쿠팡은 단순 유통 채널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됐다. 직고용 인원은 8만 명으로 국내 2위다. 물류 자회사와 배송기사까지 더하면 40만 명 이상의 밥줄이 달려 있다. 이들에게 쿠팡 영업정지는 해고 통지서나 다름없다.
쿠팡의 잘못을 덮어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개인정보 관리 소홀은 물론 오랫동안 논란이 된 수수료 갑질과 자사 브랜드(PB) 우대는 공정 경쟁을 해친 사례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국회 청문회 불출석 등 논란에 대응하는 태도도 국민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쿠팡을 향한 처벌은 과징금과 같은 실효적 방식에 집중해야지 영업정지가 돼선 안 된다. 초가집이 타면 갈 곳을 잃는 이는 집주인(쿠팡)을 넘어 셋방살이하는 사람들(소상공인)이라서다.
쿠팡의 위법 행위에는 단호히 책임을 묻되, 힘없는 을을 보호하는 냉정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의 강제 영업중단보다는 잘못된 기업을 서서히 외면하는 ‘소비자의 선택’이 진짜 처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