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방직을 모태로 하는 DI동일은 올해 9월 창립한 지 70년을 맞았다. 섬유 사업을 시작으로 2차전지와 전선에 사용되는 알루미늄 소재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왔다. 서울 강남 한가운데 자리한 사옥 빌딩 가치만 6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되는 등 오랜 업력에 걸맞게 부동산 자산도 상당하다.
여기에 더해 DI동일은 밸류업 정책을 가장 앞장서서 실행하기도 했다. 2023년 하반기 회사 주식을 사기 시작해 한때 지분율을 15%대까지 끌어올린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요구를 거의 모두 들어준 결과다. 각종 조치에도 주가 뒷걸음질우선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지분율 23.18%)를 올해 초까지 모두 소각했다. 여기에 더해 6월에는 약 300억원의 주식을 추가 취득한 뒤 소각했다. 세 차례에 걸쳐 소각된 자사주는 2725억원어치에 달했다. 8월에는 2차전지용 알루미늄박 분야에서 국내 1위를 달리는 동일알루미늄을 DI동일에 합병시켰다. 별도 상장 우려를 잠재우고 동일알루미늄 기업 가치를 DI동일 주가에 직접 반영하기 위해서다. 앞서 3월 주주총회에서는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인사가 감사로 선임됐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DI동일의 주가는 뒷걸음질 쳤다. 2023년 초 2만4000원대이던 주가가 한때 5만원까지 올랐지만 최근 2만원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코스피지수가 2400에서 4000까지 상승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주가 조작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지난 9월 발표된 금융당국 조사에서 주가조작 세력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회사를 대상으로 행동주의 활동을 벌인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현재 주가 수준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약속한 조치를 모두 이행한 이후이기 때문이다. 각종 밸류업 정책이 정말 주가에 도움이 됐다면 최소한 해당 조치를 취하기 전보다는 주가가 높은 수준을 나타내야 한다. 밸류업을 명분으로 실행한 여러 방안이 특정 세력의 ‘주가 띄우기’용 재료로만 쓰였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업 미래에는 악영향 우려밸류업을 위한 조치들이 DI동일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냉정히 살펴야 한다. DI동일이 자사주 소각 대신 해당 주식을 바탕으로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면 최대 2000억원을 조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회사인 동일알루미늄을 흡수하지 않고 상장시켰더라도 작지 않은 규모의 신규 자금 유치가 가능했다. DI동일이 신규 사업에 진출하고, 2차전지 소재에서 동일알루미늄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자금 규모다.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섬유 기업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동안에도 성장해온 DI동일의 저력을 생각하면 기회비용 손실은 더욱 뼈아프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숨 가쁘게 추진된 각종 밸류업 정책은 코스피지수를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신규 상장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순조롭게 자금을 조달하는 토양이 됐다. 하지만 DI동일 사례에서 보듯 증시 제도 개선과 기업 자체의 본질적 가치 상승은 별개다. 상장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제도 변화는 신중해야 한다. 자사주 소각 강제화, 인수합병(M&A) 시 소액주주 지분 100% 인수 등 밸류업을 내걸고 갈수록 강경해지는 정책에 대해 속도 조절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