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선 블랙야크 회장(76)은 국내 아웃도어 산업의 탄생과 성장을 현장에서 함께 만들어온 1세대 창업주다. ‘등산 장비 시장’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1970년대, 그는 서울 동대문의 1평짜리 가게에서 국산 배낭을 만들며 길을 냈다. 시장도, 제품도, 고객도 없던 불모지에서 시작된 그의 선택은 이후 한국 아웃도어 산업의 반세기로 이어졌다.
1995년 출범한 블랙야크는 그 궤적의 중심에 있다. 산악인의 생명을 책임지는 장비를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기술을 고집했고,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중국과 유럽으로 시야를 넓혔다.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로는 이례적인 글로벌 행보였다. 블랙야크가 걸어온 길은 한 기업의 성장사를 넘어, 한국 아웃도어 산업이 어떻게 시장을 만들고 세계로 나아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최근 강 회장이 책을 펴낸 것도 그 여정을 정리해 남기기 위해서다. 취업과 창업 앞에서 주저하는 젊은 세대, 실패를 두려워해 한 발을 떼지 못하는 후배 창업자들을 향해 자신이 통과해온 선택과 시행착오를 담았다. 성공의 결과보다,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왜 도전을 택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결국 넘어야 할 산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깨달음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신간 출간을 계기로 강태선 회장을 만났다. 맨땅에서 글로벌 기업을 일구기까지 그가 붙잡아온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리고 지금 세대에게 왜 다시 ‘문밖으로 나가라’고 말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들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 저서 <오늘도 도전이다> 이후 13년 만에 책을 내셨습니다. 이번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취업이 안 돼서 창업을 고민하는 청년들, 막상 창업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 흔들리는 사람들, 직장에 들어갔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방황하는 20~30대를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2009년엔 히말라야 등반 이후 산을 통해 삶을 돌아본 <정상은 내 가슴에>를 냈고, 2012년에는 제가 일궈온 사업의 과정을 <오늘도 도전이다>에 담았는데요. 이번 책은 젊은 세대에게 용기와 방향을 건네는 경영서에 가까운 책을 쓰고 싶었어요.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겪었던 선택과 실패, 버텨온 시간들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컸습니다. 제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문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 ‘한계에 부딪혀 일어설 용기를 잊은 젊은 경영인에게’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고민이 너무 많습니다. ‘그냥 쉬는’ 청년이 7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나오지 않습니까. 취업이 어렵다고 느끼는 청년들까지 포함하면 200만 명 가까운 젊은 세대가 진로 문제로 흔들리고 있다고 봅니다. 이 상황 자체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취업’이라는 하나의 선택지에만 매달리지 말고, 창업이라는 또 다른 길에도 도전해 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국내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려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국내 시장은 인구도 적고, 기업 하기에 제약이 많은 환경입니다. 경제 여건도 녹록지 않죠. 꼭 한국에서만 기회를 찾으려고 하기보다 동남아 등으로 저변을 넓히면 문호가 열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질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스스로 한계를 그어버리지 말고, 다시 한번 밖으로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장 많이 담았습니다.”
▶ 1973년 동대문에서 1평짜리 의류점 ‘동진사’를 창업한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드라마틱합니다. 무일푼에 가까운 상태에서 가게를 인수했지만, 정작 팔 물건조차 없었다고요. 시장·소비자·상품이 모두 없는 ‘3무(無)’ 상태에서 첫 사업을 시작했다고 쓰셨는데, 그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사실 그 가게도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지인이 보증 문제로 부도가 나며 자리가 비었고, 순간적으로 ‘내가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돈을 빌려 간신히 보증금만 마련했지, 물건을 살 여력은 전혀 없었어요. 일단 가게부터 열어놓고, 물건은 그다음에 생각하자는 심정이었습니다.
가게를 얻고 나서 고민한 건 단 하나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자금이 없어 등산 장비는 엄두를 못 냈고, 옷 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익힌 유통 경험을 살려 의류부터 팔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가게에서 물건을 빌려다 파는 이른바 ‘데도리’를 했죠. 손님이 찾는 물건이 있으면 동대문과 남대문 일대를 뒤져서라도 구해왔습니다. 가게는 텅 비어 있었지만, 그렇게 하나둘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블랙야크의 경영 철학인 ‘3무·3불’도 그때 나왔습니다. 시장도, 고객도, 상품도 없던 상황에서 ‘없습니다, 모릅니다, 안 됩니다’라는 세 가지 말만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손님이 찾아온 이상, 어떻게든 답을 내놓는 성의가 없으면 장사는 이어질 수 없다고 봤습니다.”
▶ 결국 그렇게 창업 2년쯤 뒤 기성복 판매가 잘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등산 장비 제작·판매에 뛰어드셨습니다. 처음부터 등산장비업을 염두에 두셨다고 했는데, 한라산 근처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영향이 컸던 건가요. 당시 이미 ‘경제 발전 속도에 비례해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하셨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자라며 산은 일상이었습니다. 섬이다 보니 놀거리가 많지 않았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오름이 워낙 많아 자연스럽게 산을 오르내리며 자랐습니다. 어린 마음에 바다엔 귀신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다는 늘 위험하다고 느꼈지만, 산은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뒤에도 산을 찾았는데, 그때 처음 제대로 된 배낭을 메게 됐습니다. 당시엔 쓸 만한 배낭이 없어 미군 군용 배낭을 불하받아 썼는데, 며칠씩 메고 다니기엔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원단을 사 직접 뜯고 고쳐가며 손봤습니다. 몇 차례 개량하다 보니 훨씬 편해졌고, 주변에서 ‘어디서 샀느냐, 팔아달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국산 배낭 1호였습니다.
가게를 연 뒤 처음 2년은 자금이 없어 기성복 장사를 하며 버텼습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이제는 등산 장비, 특히 배낭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공장을 차릴 형편은 아니었지만, 동대문에서 미싱을 돌리던 수선 아주머니들과 함께 제작을 시작했고, 매장에서 직접 판매했습니다. 그렇게 등산 장비 사업이 본격적으로 출발했습니다.”
▶ 특허청도 설립되기 전, 1976년 동진산악의 첫 브랜드 ‘자이언트’를 만드셨습니다. 당시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처음부터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식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배낭을 만들어 놓고 보니 너무 밋밋해 보였고, 이왕이면 이름 하나쯤 달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자이언트’였죠. 당시에는 전략이나 마케팅 개념 없이, 말 그대로 제품에 이름을 붙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야 주변에서 ‘이게 브랜드니, 등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관련 제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이후 특허 제도가 생긴 뒤에야 상표 등록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의도치 않게 브랜드의 출발점이 된 셈이죠.”
▶ 1993년 현대자동차 사원들에게 제공할 침낭 3만2000개를 20일 만에 제작해야 했던 이야기도 책에 담으셨습니다. 다른 업체들이 모두 불가능하다며 물러났는데, 회장님만 수락하셨다고요. 당시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조건이었습니다. 20일에 3만2000개라는 건 납기나 수량, 품질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죠. 그래서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런데 발주하는 쪽도 그게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요청을 했다는 건, 누군가는 한 번 도전해 보길 바랐다는 뜻일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안 된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일단 시작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시작해 놓으면 방법은 나오고, 결론은 그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봤습니다.
다들 물러설 때 저는 그 자체를 하나의 기회로 봤습니다. ‘안 된다, 안 된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잖아요. 오히려 다른 답이 있을 수 있지 않으냐는 생각을 한 거죠. 젊을 때니까요. 해보지 않으면 가능과 불가능은 알 수 없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볼 수 있는 일’로 바꾸는 힘은 시작하는 용기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일단 시작하고, 결말은 나중에 짓는 것. 그게 그때도 지금도 제 방식입니다.”
▶ 수출 지향, 세계로 뻗어나가는 자세를 지속해서 강조하셨습니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시야는 언제, 어떤 계기로 갖게 되신 건가요.
“결정적인 계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7000달러 수준이었는데, 올림픽은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이후 경제도 빠르게 성장했죠.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보통 올림픽을 계기로 자국 스포츠 브랜드가 커지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984년 LA 올림픽을 계기로 나이키가 도약했고,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미즈노가 성장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아디다스 같은 자국 브랜드가 세계로 뻗어나갔죠. 반면 한국은 올림픽 이후 국내 스포츠 브랜드들이 대부분 무너졌어요.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니 답은 분명했습니다. 시장이 너무 작았던 겁니다. 소비 여력이 없으니 아무리 제품을 만들어도 사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학교 체육이나 개인 소비 모두 값싼 제품만 찾았죠. 정책이나 의지만으로는 산업이 지속될 수 없고, 결국 시장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절감했습니다.
올림픽 이전까지는 해외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아웃도어 매장도 거의 없었고, 저는 가방 가게나 체육사에 배낭과 장비를 도매로 공급하고 있었죠. 그런데 체육사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배낭은 있어도 팔 곳이 사라지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하려면 시장을 넓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당시로선 벽이 너무 높았고, 일본은 이미 강력한 브랜드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중국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제대로 된 아웃도어 시장이 없었고, 베이징에도 등산장비점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진출’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개척’에 가까웠습니다.”
▶ 1990년대 다롄에 공장을 세우며 시작한 첫 중국 진출은 실패로 끝났고, 1998년 두 번째 도전에서는 성과를 냈다고 하셨습니다. 마케팅·기술과 함께 ‘현지화 전략’을 재정비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였습니까.
“첫 중국 진출은 1993년이었습니다. 그때는 시장을 보지 않고 ‘생산’만 봤습니다. 중국을 소비 시장이 아니라, 원가를 낮추기 위한 공장으로만 접근했죠. 그 판단이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생산과 소비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1998년 두 번째 진출에 나섰습니다. 다롄 대신 톈진을 거점으로 삼고, 베이징에 사무실을 열어 ‘중국에서 팔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때부터 현지화 전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변화가 법인 이름이었습니다. ‘블랙야크’라는 영어 이름 대신 ‘풍우설(?雨雪)’이라는 중국 이름을 썼습니다. 바람·비·눈 속에서도 입는 옷이라는 의미를 담았고, 발음도 쉽고 직관적이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이 기억하기 쉬운 이름으로 바꾼 것이 현지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문화에 대한 접근이었습니다. 단순히 ‘한국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고 봤습니다. 중국에서 성장하려면 중국 사회와 먼저 연결돼야 했죠. 그래서 만리장성 보호·복원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문화유산을 함께 지키는 활동에 나선 겁니다. 현지 산악인과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함께했고, 언론 보도로 이어지면서 브랜드도 서서히 스며들었습니다. 제품을 팔기 전에 사람과 문화에 먼저 다가가려 했습니다.”
▶ 2000년대 초반 아웃도어 업계 1위 자리를 내줬다가, 2014년 다시 선두로 올라섰습니다. 당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과감한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고 하셨는데, 그 핵심은 무엇이었습니까.
“중국 시장을 보며 분명해진 게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 브랜드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죠.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산’보다 ‘미제’를 선호했고, 살아남으려면 글로벌 기준에서 통하는 브랜드가 돼야 했습니다.
미국 진출도 검토했지만, 현실적인 선택지는 아니었습니다. 보수적인 시장인데다, 현지에서도 한국 패션 브랜드로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죠. 그래서 방향을 유럽으로 틀었습니다. 유럽은 여러 시장이 있고, 한 나라에서 안 되면 다른 나라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문제는 내부 반발이었습니다. 유럽 진출에 대한 반대가 컸기 때문에, 기존 조직을 설득하기보다 새로운 팀을 꾸렸습니다. 대리급 직원 다섯 명으로 ‘5 대리 TF팀’을 만들어 함께 유럽으로 갔습니다. 직급이나 연차보다 실행력과 감각을 중시했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시장을 열도록 했습니다.”
▶ 2012~2013년을 사업하면서 가장 방심했던 시기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호황기에 불황을 대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는데요.
“그 시기엔 한국 시장이 워낙 잘 돌아가 위기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신 저는 유럽 진출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고 있었죠. 2011년 유럽에 들어간 뒤에는 현지에 상주하며 법인을 세우고, 디자인·개발 조직을 만들고, 박람회를 돌며 기반을 다졌습니다.
문제는 균형이었습니다. 유럽에 ‘운명을 걸다시피’ 몰입하는 사이 한국 본사 관리에 빈틈이 생겼고, 조직 전체의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한쪽에만 집중한 대가가 뒤늦게 부담으로 돌아온 거죠.
다만 그 선택은 나름의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패션 브랜드 가운데 해외에서 브랜드로 자리 잡은 사례가 거의 없었습니다. 공장은 많았지만 대부분 하청 구조에 머물러 있었죠. 저는 언젠가는 원청이 돼야 한다고 봤고, 그러려면 시장과 브랜드, 기술을 함께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 부담이 컸고 성과도 더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지금 중국 시장에서 블랙야크는 ‘한국 브랜드지만 다른 한국 브랜드와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업은 당장의 성과만 보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길게 보면, 언젠가는 그동안의 손실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유럽 유명 브랜드들의 라이선스 판매 제안도 거절하셨다고요.
“1980년대에는 국내에 들어온 해외 브랜드 가운데 제 손을 거치지 않은 브랜드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돈만 생각했다면 라이선스 사업이 훨씬 쉬웠고, 수익도 안정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길을 택했다면 지금의 블랙야크는 없었을 겁니다. 라이선스 브랜드는 잘 팔릴 수밖에 없고, 조직도 자연스럽게 돈이 되는 쪽으로 쏠립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남의 브랜드를 키워주는 회사로 남게 되죠.
저에게는 돈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우리 브랜드 하나는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렵고 더딘 길이라는 걸 알았지만, 블랙야크라는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 코로나19 시기 매출이 급감하자, 트렌드를 좇아 패션 중심 제품으로 방향을 튼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쓰셨습니다.
“그때는 여러 조건이 한꺼번에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유럽 사업도 10년 가까이 공을 들여 막 성과가 나기 시작했는데, 팬데믹으로 유럽·중국·한국 시장이 동시에 멈춰 섰죠. 외부 환경이 급변하다 보니 저 역시 흔들렸습니다. 내부에서는 ‘아웃도어보다 캐주얼·패션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왔고, 결국 그 흐름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약해졌던 겁니다.
2년 가까이 패션 중심으로 가봤지만, 블랙야크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제품도 철학도, 브랜드 이미지도 모두 어긋났죠. 그래서 직원들을 모아 분명히 정리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아니고, 브랜드 정체성과도 맞지 않으니 당장 멈추자고요. 결과적으로 매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 브랜드 철학을 훼손한 선택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후회하는 결정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 반면 아크테릭스라는 브랜드를 높이 평가하셨는데요.
“아크테릭스는 캐나다에서 출발한 브랜드인데, 초창기 멤버들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유행이나 단기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고, 기술 개발 하나로 승부를 걸었죠.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블랙야크 역시 히말라야를 기반으로 한 정신과 기술 철학으로 성장해왔습니다. 다만 중간에 몇 차례 방향이 흔들리면서 그 흐름이 끊긴 적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어려울수록 방향을 틀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크테릭스도 성장 과정에서 힘든 시기를 여러 번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버텼고, 결국 그 선택이 브랜드를 만든 승부수가 됐습니다. 어려울 때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 그 점에서 아크테릭스를 높이 평가합니다.”
▶ 사업을 하며 어려웠던 순간들이 책 곳곳에 등장합니다. 돌아보면 가장 큰 고비였던 때는 언제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을 자주 받는데, 특정한 한순간을 꼽기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도 매일 선택의 연속이고, 그 자체가 늘 부담입니다. 기업을 한다는 건 오너에게 하루하루 판단과 책임이 이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글로벌 브랜드로 남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가 잠깐 반짝하다 사라집니다. 잘나간다는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리고, 결국 시장에서 퇴장하죠. 글로벌 브랜드란 수많은 고비와 굽이를 넘으며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를 정리해두는 것 자체가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그래야 창업주가 떠난 뒤에도 철학과 시스템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려운 순간을 덮어두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기록하고 분석해 다음 단계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국내 기업 가운데 그런 점에서 풀무원을 자주 떠올립니다.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철학이 이어지고, 지분 구조가 바뀐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헛발질하지 않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 그게 결국 오래가는 기업을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 요즘 경영에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또 등산 산업의 ‘르네상스’는 다시 올 것으로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등산의 개념 자체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보다 덜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합니다. 젊은 세대도 산에 많이 가요. 다만 소비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등산은 위험하고 전문적인 활동이었습니다. 장비를 제대로 갖춰야 했고, 단체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죠. 자연스럽게 장비 소비도 뒤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등산이 나들이에 가까운 문화가 됐고,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환경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지자체들이 길을 잘 정비하면서 위험 요소가 줄었고, 혼자서도 부담 없이 산에 오를 수 있게 됐습니다. 며칠 전 한라산에 갔을 때는 정상까지 데크와 계단이 잘 깔려 있어 ‘이러면 내가 왜 등산을 하나’ 싶은 정도였죠. 그만큼 전통적인 등산 장비에 대한 필요성은 줄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고민은 달라진 등산 문화에 맞는 제품을 어떻게 제안할 것인가입니다. 소풍처럼 가볍게 산을 찾는 사람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봐야 합니다. 보온병이나 스틱, 무릎 보호대처럼 활용도가 높은 실용적인 제품들이 그 예입니다. 과거와 같은 형태의 등산업 르네상스가 다시 오지는 않겠지만, 문화가 바뀐 만큼 새로운 수요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변화에 맞춰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가 지금 경영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 책에서 기업 경영자를 ‘창조 경영자’와 ‘창작 경영자’로 구분하셨습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을 창조 경영자의 대표적 사례로 꼽으셨는데요.
“창조 경영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고, 역사적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어낸 방식입니다. 다만 그만큼 어렵습니다. 정주영 회장이나 김우중 회장 같은 인물은 아무나 나올 수 없죠. 그렇다고 창작 경영이 열등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창작 경영 역시 충분히 가치가 있고, 창조 경영에 못지않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것을 잘 분석하고 발전시켜 더 나은 제품, 더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면 세계 1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그런 창작 경영의 역할과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 ‘남과 다른 생각’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유럽 진출처럼 단기 성과가 바로 보이지 않는 결정을 밀어붙일 때, 직원들의 사기를 어떻게 설득하고 붙잡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습니다. 먼저 직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좋은 의견은 반드시 반영합니다. 의견을 무시한 채 결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제 판단과 직원들의 판단이 팽팽하게 맞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감정이 아니라 ‘비교 경쟁’을 합니다. 이 안과 저 안을 놓고 끝까지 따져보고, 논의 과정에서 직원들이 제 판단에 납득하면 그 길로 가고, 반대로 직원들의 안이 더 설득력이 있으면 그쪽을 따릅니다.
직원들을 존중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도 있습니다. 오너만큼 회사 전체를 깊이 고민해본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 판단이 당장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설명에 그치지 않고, 일을 맡깁니다. 제 아이디어를 가지고 ‘직접 해보라’고 합니다. 반대했던 직원이든 찬성했던 직원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해보는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게 대드는 직원도 좋아합니다. 그만큼 배짱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 MZ세대 직원들에게도 회장님의 ‘3불 철학’(고객에게 ‘없습니다, 모릅니다,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통한다고 보시는지요. ‘워라밸’에 대한 인식 변화나, 최근 ‘고객 갑질’을 더 이상 참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충돌은 없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제가 사업을 시작하던 때와 환경이 완전히 다릅니다. 요즘을 AI 시대, 로봇 시대라고 하지만 그 흐름 역시 역사 위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를 무시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과거에만 머물라는 뜻은 아닙니다.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보되, 비중을 둔다면 2 대 3 대 5 정도로 보자는 의미입니다.
흥미로운 건 과거를 깊이 이해한 사람들이 오히려 미래를 잘 본다는 점입니다. 해외 시장을 이해하려 해도 결국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해야 합니다. 제 ‘3불 철학’이 젊은 직원들 모두에게 당장 와닿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좋아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다만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를 고민해보는 사람은 결국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예전에는 물건이 없으면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직접 발로 뛰며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동대문이 안 되면 다른 시장을 찾고,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야 했죠. 지금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손님은 바로 떠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없다고 단정하지 말고, 한 번 더 듣고, 두 번 더 들어보라는 겁니다. 고객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그 제품이 아니라면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안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갖추라는 것이죠. 모든 직원이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이유도 회사가 어떤 철학 위에 서 있는지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붙잡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고 봅니다.”
▶ 올해 워크웨어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안전 장비 자회사 ‘블랙야크 I&C’를 상장시켰습니다. 국내 워크웨어 시장 규모가 연 1조 원 수준으로 평가되는데, 어떤 점을 보고 이 시장에 승부를 걸게 되셨습니까.
“갑자기 떠올린 사업은 아닙니다. 유럽 시장을 오래 보며 축적해 온 판단입니다. 유럽에서는 아웃도어 장비와 산업용 장비의 뿌리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건설 장비를 만들던 회사들이 등산 장비도 함께 만들었고, 그런 기업들은 200~3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장비는 점점 가볍고 기능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수요가 이동하는 흐름도 뚜렷합니다.
한국은 산업안전·워크웨어 시장이 상대적으로 비어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소득 수준이 낮고 안전에 대한 인식도 지금과 달랐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득이 오르면 가장 먼저 투자하는 것이 자신의 생명과 안전입니다. 지금은 초기 단계지만, 이 시장이 1조 원에 머물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보다 10배 이상, 1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흐름에 맞춰 선제적으로 움직인 겁니다.”
▶ 내년 목표가 있으십니까.
“매년 목표를 새로 세웁니다. 방향은 분명합니다. 글로벌 브랜드, 그것도 ‘미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가 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주요 박람회에 꾸준히 참가해 기술과 완성도 면에서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단순히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는 게 목표입니다.
중국 시장 역시 계속 확장해야 합니다.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만큼 브랜드와 제품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돼야 합니다. 유럽에서 검증된 기술과 품질을 바탕으로 하되,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감각과 디자인, 즉 그들이 좋아하는 ‘향’에 맞는 요소들도 함께 반영할 생각입니다. 결국 기술은 글로벌 기준으로 끌어올리고, 디자인과 감성은 시장별로 세밀하게 조율하는 것. 그 균형을 내년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 평소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는지, 나만의 독서 루틴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특별히 장르를 가리지는 않고 닥치는 대로 읽습니다. 가장 많이 읽을 때는 출장이 잦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출장을 가면 비행기에서 한 권, 현지에서 한 권, 돌아오면서 한 권씩은 기본으로 읽었죠. 한창 해외를 다닐 때는 트렁크에 책을 열 권씩 넣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이동이 예전만큼 잦지는 않지만, 제주도에 있는 ‘야크마을’에 가면 저녁에 혼자 조용히 책을 읽을 시간이 생깁니다. 그 시간을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트렌드 관련 책과 외국 경영자들이 쓴 책들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 베트남 전쟁 영웅 보응우옌잡 장군을 존경해 집무실에 글귀까지 걸어두셨다고 했습니다. 그의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기억에 남는 책이 있으신지요.
“친구의 추천으로 보응우옌잡 장군의 회고록 <잊을 수 없는 나날들>을 읽었습니다. 너무 인상 깊어서 세 번이나 읽었죠. 그는 베트남의 전쟁 영웅으로, 우리에게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존재입니다. 학벌이나 배경이 화려한 인물도 아니었고, 기념관 역시 과장 없이 소박했습니다. 스스로 ‘배운 건 많지 않지만 싸움은 할 줄 안다’며 호찌민을 찾아갔다는 일화가 있어요. 자신은 전쟁에서 이길 테니, 국가를 세워달라고 했다는 거죠. 결국 프랑스, 일본, 미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전략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정면 대결을 피하고, 늘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를 만들었습니다. 적이 평야에 있으면 산으로, 산에 있으면 계곡으로 이동하며 상대를 혼란에 빠뜨렸죠. ‘정면승부는 반드시 진다’는 판단 아래 끝까지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약자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힘의 대결이 아니라 전략이라는 것, 그걸 온몸으로 증명한 인물이 보응우옌잡 장군이라고 생각합니다.”
▶ 후배 창업가나 젊은 기업인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취업이 안 되거나 창업을 준비하다가, 혹은 창업 이후 뜻대로 풀리지 않아 흔들리는 젊은 분들은 대개 극심한 불안 속에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겁이 나죠. 무엇보다 돈이 없다는 현실이 가장 큰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창업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만으로 투자받는 문화도 약하다 보니, 결국 부모나 가족, 가까운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돈이 얼마나 어렵게 모은 돈인지 알기에 ‘못 갚으면 어떡하나’라는 압박감이 실패보다 더 큰 공포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압박에 짓눌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안을 안고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위축될 뿐이죠. 창업을 결심했다면,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라도 반드시 벌어서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불안을 견디는 배짱과 담대함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위축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당하게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의 추천 책
1. <잊을 수 없는 나날들> | 보응우옌잡- 읽는 내내 보응우옌잡 장군의 탁월한 전략과 리더십에 매료됐다.
2. <이나모리 가즈오의 마지막 수업> | 이나모리 가즈오- 경영의 신이 남긴 가르침을 보며 50년 초심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3.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 김상근- 사업이란 숫자보다 사람을 남기는 과정.
4.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 빌 게이츠- 자연이 터전인 우리에게 기후 위기는 곧 생존의 문제다. 많은 기업가가 '자연과의 공존'을 새기며 경영을 하길 바란다.
5. <철학이 있는 기업> | 괴츠 W. 베르너- 이익 너머 기업이 존재해야 할 이유와 경영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i>'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i>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