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판단까지 형사처벌 대상…“원칙중심 회계와 정면 충돌”

입력 2025-12-17 17:54
수정 2025-12-17 17:55
이 기사는 12월 17일 17:5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회계처리기준 위반을 형사처벌의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는 현행 외부감사법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원칙중심 회계기준(IFRS)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진 해석과 판단에 대해 사후적으로 범죄화하면서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과 관련해 회계·상법·세법을 아우르는 종합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17일 서울 여의도 FKI빌딩에서 열린 2025 한국투자자포럼 학술토론회에서는 회계처리기준 위반에 대한 형벌 규정과 자기주식(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둘러싼 회계·세무 쟁점을 놓고 심도깊은 논의가 이뤄졌다.

이번 토론회는 사단법인 한국투자자포럼이 주최하고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후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회계처리기준 위반에 대한 형벌 문제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모두 자본시장 신뢰와 기업 의사결정의 예측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첫 발표자로 나선 송창영 법무법인 세한 변호사는 회계기준 위반을 곧바로 형사처벌로 연결하는 현행 구조가 IFRS 체계와 구조적으로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IFRS는 거래의 경제적 실질에 따라 복수의 합리적 판단을 허용한다. 그런데 사후적으로 특정 해석만을 ‘정답’으로 전제해 처벌하는 것은 명확성 원칙과 죄형법정주의에 반할 소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송 변호사는 “고의적이고 중대한 분식회계는 엄정 대응이 필요하지만, 정상적인 판단과 재량 영역까지 형사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것은 과도하다”며 “행정제재와 과징금 등 단계적 규율을 우선 적용하고 형벌은 최후 수단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논의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관련된 회계·세무상 쟁점이 집중 조명됐다.

김기영 명지대 교수는 주주환원 수단으로 떠오른 자사주 소각과 관련해 현행 상법·회계·세법 체계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이익소각 시 발행주식 수는 줄어들지만 법정자본금은 유지돼 재무제표상 자본금과 주식 수 간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자사주 소각은 단순한 이익 처분을 넘어 자본 환급의 성격을 함께 갖는다”며 “회계기준만 조정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고, 상법 개정을 통해 자본금 조정이 가능하도록 제도 구조를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패널 토론에서도 각 쟁점별 보완 방향이 제시됐다. 박종성 숙명여대 교수는 회계처벌과 관련해 형벌 적용 요건을 고의성과 중대성 중심으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칙중심 회계에서 판단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결과만으로 범죄 여부를 가리는 방식은 제도적 긴장을 키운다”고 말했다.

산업계 패널로 참석한 강경진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회계처리 판단이 형사 리스크로 직결되는 구조는 기업의 정상적 경영 판단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행정제재 중심의 단계적 규율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재원 홍익대 교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도입될 경우 자본금 표시 왜곡 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 있다”며 “미국처럼 자사주를 미발행 주식으로 환원해 자본금을 자동 조정하는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광열 한국회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주주환원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하지만 예외 설계가 미흡할 경우 기업이 자사주 매입 자체를 회피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기존 보유 자사주에까지 일률적인 소각 의무를 부과할 경우 신뢰보호 원칙과 소급입법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충분한 유예기간과 단계적 적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