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은행들에 총 2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 과징금이 예고된 가운데, 같은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상 과징금 대상인 신한은행도 제재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국이 과징금 산정 기준으로 법상 기준인 '수입 등'에 대해 '거래금액'으로 확정하면서 제재 수위가 높아질 수 있어서다. 이에 금융권에선 ELS 같은 투자상품뿐 아니라 예금·대출상품에 이르기까지 법적 분쟁이 잇따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ELS 이어 신한은행 '초긴장'…수백억 과징금 철퇴 전망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최근 금소법상 과징금 부과 기준을 확정하면서, 신한은행 중도금대출 건에 대한 금감원의 제재 논의에도 속도가 붙었다. 2021년 금소법 시행 이후 과징금이 실제 부과된 사례는 메리츠자산운용 무단광고, 홍콩 ELS 불완전판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신한은행 건은 2023년 정기검사에서 적발됐지만, 과징금 기준이 정해지지 않아 처분이 미뤄져 왔다.
신한은행 제재 논의가 재개된 건 홍콩 ELS 제재를 앞두고 금융당국이 '뜨거운 감자'였던 과징금 산정에 대한 입장을 정하면서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금소법상 과징금 기준인 '수입 등'을 원칙적으로 '거래금액'으로 해석하기로 했다면서, 이런 내용을 담은 금소법 감독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금소법에선 '위법 행위로 얻은 수입 등'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간 시장에선 '수입'이 갖는 의미와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준을 무엇으로 채택하는지에 따라 과징금 규모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업계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당국은 내부 태스크포스(TF) 논의 끝에 예금성 상품은 예금액, 대출성 상품은 대출액, 투자성 상품은 투자액을 각각 과징금 산정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중도금대출과 관련 광고 심의 절차를 빼먹은 게 문제가 됐다. 만기가 도래한 소비자들에게 잔금대출 상담사를 문자로 안내하는 과정에서 문자 내용에서 '준법감시인 심의필' 식별번호를 누락했다. 금융상품 광고는 허위·과장·오인을 막기 위해 사전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회사가 이를 생략했기 때문에 금소법을 위반했다는 게 당국 판단이다.
쟁점은 과징금 규모다. 회사가 실제로 얻은 이자 수익이 아니라 중도금대출 원금 전체를 '수입'으로 보고 과징금이 산정될 예정이어서, 수백억 원대 과징금 폭탄이 가능해진 상황이다. 비교적 경미한 위법 행위인데도 만기까지 상환받을 대출금 전액을 기준으로 무리하게 과징금을 지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금융권·법조계 "금융당국 판단은 무리수"현행 금소법을 들여다보면 당국의 이런 해석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권과 법조계의 중론이다. 법과 하위 규정이 서로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하위 규정 안에서도 상충되는 내용들이 있어서다.
금소법 제57조에는 과징금 부과 기준에 대해, 위반행위와 관련된 계약으로 '얻은' 수입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얻은'이라는 표현은 해당 시점까지 금융사가 이미 취득한 이익을 뜻한다. 대출상품에 대입하면 금융사가 실제 얻는 이익은 이자와 수수료다.
하지만 현행 금소법의 시행령 제43조에서는 수입등의 산정기준에 대해 '금융소비자로부터 얻는 모든 형태의 금전 등이 대상'이라고 돼 있다. 법과 달리 시행령에선 '얻은'이 '얻는'으로 표기된 셈인데, 단순 시제의 차이지만 해석이 크게 달라진다. '얻는'은 취득 예정인 이익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대출상품의 경우 향후 회사의 회수분을 포함한 '대출원금'이 기준이 된다. 금융사가 소비자에게 지급한 돈까지 '취득한 돈'으로 보겠단 얘기다.
당국도 표현상 위험성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행령 조문 개정을 통해 '금융소비자로부터 얻는 모든 형태의 금전 등'을 '얻은 모든 형태의 금전'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융위는 과거형 시제의 '얻은'으로 바꾸는 대신, 시행령에 예금·대출·투자 상품은 과징금 산정 기준을 판매금액 기준으로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법의 하위 규정인 시행령 안에서조차 서로 반하는 내용이 들어가게 된 셈인데, 법조계에서는 "시제는 과거형으로 돌려놓고, 거래금액 기준을 굳혔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 일탈한 해석…금융당국, 줄피소 불가피"
금융위가 현행 법령을 유지할 경우, 당국은 투자상품뿐 아니라 대출·예금 전반에서 과징금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관련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특히 신한은행 사례처럼 절차상 광고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도 대출원금 전체를 기준으로 과징금이 산정되면, 위법 행위의 경중과 제재 수위 간 비례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특히 대출은 원금이 클수록 과징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구조"라며 "금소법 취지와 동떨어진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만일 금융회사가 과징금에 불복해 판단이 법원의 공으로 넘어가게 되면, 당국에는 불리할 수 있다. 과징금은 재산권을 제한하는 행정처분이어서, 법원은 시행령이나 감독규정보다 '법률' 내용을 우선해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금융 전문 법조계 한 관계자는 "당국이 시행령과 감독규정에 구체화한 내용이, 금소법 법률 속 내용에는 반한다. 하위규정이 사실상 새로운 법을 만든 셈"이라면 "징벌적 과징금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 기준이 유지될 경우 과도한 과징금 판례가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입법취지 고려한 판단…하위규정은 보충적 역할"금융당국은 이번 과징금 기준 확립이 위법행위 억제와 징벌적 효과를 고려한 불가피한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시행령과 감독규정 등 하위 규정이 법에 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법의 취지를 구체화하고 보완하는 성격이라는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행령에서 '얻는' 등 표현을 조정한 것은 해석상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정비한 것"이라며 "일부 표현과 내용은 손봤지만, 거래금액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큰 방향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거래금액 기준을 채택한 것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수수료 수익으로만 수입을 한정하면 위법행위 억제라는 금소법 제정 당시의 입법 취지가 충분히 발현되기 어렵다고 봤다"고 부연했다.
대출상품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금융계약은 쌍무계약인 만큼 대출 역시 계약 체결 시점에 금융회사가 대출채권을 취득하게 된다"며 "이 채권 취득 부분을 수입으로 보고, 다른 금융상품과 마찬가지로 일관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금융위 법령해석심의위원회의 판단 역시 당국 논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법령해석심의위는 법령 해석에 이견이 있을 때 거치는 절차다. 금융위 심의위는 올 7월 금소법상 과징금 부과 기준과 관련해 투자상품의 경우 '투자원금'을 기준으로 삼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지난달 심의위가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하위 규정인 금투업규정이 일탈한다고 지적한 사례가 있었던 만큼, 이번 판단은 당국 해석에 일부 정당성을 줄 것으로 풀이된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