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 17일 오후 5시 20분
고려아연이 지난 15일 발표한 미국 테네시주 제련소 프로젝트는 전례 없이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미국 전쟁부와 상무부가 최대주주인 제련소 합작법인(크루서블JV), 고려아연이 100% 지배하는 운영법인(크루서블메탈스)으로 나눠 추진된다. 규제 해소와 수요처 확보를 담당하는 해결사를 맡는 합작법인은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윤범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한다.
복잡한 구조에도 시장에선 기대가 컸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와 협력해 획기적으로 빠른 속도로 제련소를 짓고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주에게 이로운 선택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제련소 프로젝트 발표 직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X(옛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미국의 큰 승리”라며 반색하자 시장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15.4%는 주당 1센트 취득
미국 정부 측 합작법인은 이번 제련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고려아연의 19억4000만달러(약 2조85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0.59%를 확보할 예정이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고 있는 최 회장의 백기사로 나섰지만 정작 미 정부가 받는 대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 취재 결과 미국 정부는 제련소 운영법인 지분뿐 아니라 다양한 수익권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정부는 제련소 운영법인의 채권자다. 미국 전쟁부와 현지 금융사들은 운영법인에 46억9800만달러를 대출한다. 그 대가로 적지 않은 지분을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확보했다. 우선 최대 15.4%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 행사 가격은 주당 1센트(14원)로 책정돼 가격 적정성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제련소 기업가치가 150억달러(약 22조원)에 달할 정도로 순항하면 추가로 20% 지분을 시가에 취득할 수 있다.
미 정부는 이 밖에도 다방면에서 수익권을 가진다. 우선 합작법인은 제련소 운영법인에서 매년 최대 1억달러 규모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또 수익이 나면 매년 일정 수익의 20%를 성과 보수로 차별적으로 받는다. 사모펀드(PEF) 수익 구조를 벤치마크한 것이다.
미국 정부 측은 이번 거래로 고려아연 이사회에 진입할 권리까지 확보했다. 고려아연 지분 10.59%를 취득하면서 2026년과 2027년 이사 1명씩 총 2명의 이사를 지명할 권리를 얻었다. 미국 전쟁부 측 인사가 이사 후보로 추천될 예정이다. 상무부는 미국 현지 공장 생산 광물에 대한 우선적 접근권뿐 아니라 울산 온산제련소, 호주 제련소 생산 광물에도 일부 우선 접근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미국과의 전략적 제휴는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아연은 온산제련소의 제련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미국 제련소에 적용하고, 온산제련소 핵심 인력을 조기 파견할 예정이다. 한 자본시장 변호사는 “회사의 체질을 바꿔버리는 투자 결정”이라며 “경영의 중심축을 미국으로 옮겨버리는 영업양수도 성격의 거래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장 가동 정당한 대가”고려아연은 신주인수권 발행을 통한 지분 인수는 미국 정부가 다른 기업에도 요구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고려아연과 비슷한 희소금속을 생산하는 MP머티리얼스도 미국 전쟁부에서 4억달러를 투자받으면서 최대 15%의 지분을 넘겨주는 옵션 계약을 맺었다.
연 1억달러에 달하는 수수료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크루서블메탈스가 본격 가동되는 2030년에 매출과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각각 5조6000억원, 1조2500억원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제련소 건설에 필요한 인허가와 규제 관련 자문 서비스, 수요처 발굴 등의 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한 비용”이라며 “공장 정상 가동 시기를 앞당길 수 있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송은경/김우섭 기자 nor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