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한 해였습니다. '스피드'를 시작으로 '일무', '미메시스'까지 서울시무용단의 새로운 시도로 '전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으니까요. 올해 마지막 무대도 오첩반상처럼 다양하게 맛보실 수 있을 거예요." (윤혜정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
올해 '전석 매진' 신기록을 쓴 서울시무용단이 오는 18~21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피날레 공연을 올린다. 소속 단원이 한국무용을 바탕으로 창작한 다섯 가지 2인무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안무가 랩: 듀오'다. 이번 듀엣 무대를 기획한 윤 감독과 직접 짠 안무로 무대에 오르는 유재성·한지향 무용수를 지난 1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윤 감독은 서울시무용단이 창단 51년 만에 처음으로 1년 치 정기 공연이 전석 매진된 사실을 언급하며 "우리 무용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불식시키는 작품들로 다양하게 편성한 한 해였다"고 돌아봤다. 이번 듀엣 무대도 형식 면에서 신선한 시도로 평가된다. 무대 위 두 명의 무용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두 명씩 짝을 이룬 다섯 개 팀의 각양각색 춤사위가 쉼 없이 밀려온다. 윤 감독은 "기존 안무작이 30~40분짜리 더블빌(서로 다른 두 개 작품을 한 무대에서 공연)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짧은 시간 안에 듀엣으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하기 위해 콘셉트를 바꿔봤다"고 설명했다.
네 번째 무대를 맡은 유재성·한지향 무용수는 '잔향'(Afterwarm)이라는 제목의 공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10년차 단원인 유재성은 "3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3주 전에는 오래 함께한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며 "가까운 존재가 내 곁을 떠났을 때 몸이 기억하는 온기와 감각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년차 단원인 한지향은 "이전 무대에선 무용단에 누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내 춤의 결을 자유롭게 느끼며 춤추고 싶다"며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파트너와 같았기 때문에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었다"고 했다.
'안무가 랩: 듀오'에선 다섯 팀의 서로 다른 연출을 비교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최옥훈·정철웅의 '불어도 춥지 않던 바람'에선 영상을 활용하고, 박수진·은혜량의 '바앙'(Room)에선 레이저 조명이 무대를 밝힌다. '잔향'에선 듀엣 무대를 채우는 라이브 피아노 연주가 서정적인 분위기를 배가한다. "피아노 건반의 떨림에 맞춰 아른거리는 기억 속 감정을 부드럽게 올라타는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려고 해요. 지향이의 우아한 템포감과 박자를 경쾌하게 타는 제 움직임이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유재성) "피아노 선율이 워낙 아름답기 때문에 심파처럼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도록 담담하게 춤을 추려고 해요. 누군가에겐 애틋하고, 누군가에겐 사랑스럽게 느껴질 거예요."(한지향)
최근 들어 차세대 안무가를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예술단체 소속 단원이 창작 안무를 선보일 자리는 흔치 않다. 유 단원은 "제 이름을 걸고 저만의 움직임을 진득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번 기회가 선물처럼 소중하다"며 "'듀엣을 잘해야 좋은 댄서'라는 유 감독님의 말씀을 제 무대를 통해 증명하고 싶다"고 웃었다. 한 단원은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와 실제로 몸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작품에 대입하며 즐기시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