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환율 1480원, 불필요하게 높은 수준…금융위기 아니지만 물가·양극화 위기"

입력 2025-12-17 18:14
수정 2025-12-18 01:40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장중 1480원을 넘어선 원·달러 환율에 대해 “불필요하게 올라간 레벨(수준)은 조율(대응)할 수 있다”고 밝힌 점에 시장은 주목했다. 외환당국 수장이 환율의 변동성이 아니라 수준을 평가하고 개입 의지를 밝힌 것은 이례적이어서다.

이 총재는 이날 물가안정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환율 수준에 우려의 메시지를 냈다. 이 총재는 현재 환율 수준에 대해 “우리나라는 2014년 이후 순대외채권국이기 때문에 원화가 절하되면 이익 보는 분도 많다”며 “금융회사가 넘어지고 국가 부도 위험이 있는 금융위기는 아니다”고 평가했다. 다만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우리 내부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극명히 나뉜다”며 “성장과 물가, 양극화 측면의 위기일 수 있어 걱정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환율 상황에서 이익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나뉘어 있어 사회적 화합이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우려가 있다”며 “고환율로 생활 물가가 추가로 오른다면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물가 모형에 따르면 통상 환율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3%포인트 상승한다. 한은은 현재 1470원대 원·달러 환율이 내년까지 계속되면 물가상승률이 기존 전망치(2.1%)보다 높은 2.3%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최근 환율 상승의 이유로 국민연금의 환헤지 전략이 사실상 공개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헤지하는 시점, 중단 시점 등 의사결정 기준이 외환시장 참가자에게 너무 알려져 있어 환율이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며 “이런 인식을 고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이 내려가면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가동하는 수준으로 다시 환율이 오를 때까지 투기성 자금이 유입되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최근 국민연금의 변화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거시적 영향을 고려해 환헤지 시점을 유연하게 결정하기로 한 점은 큰 진전”이라며 “새로운 정책이 작동하면 수급 면에 개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투자자의 해외 투자를 환율 상승 요인으로 설명한 것이 ‘서학개미 책임론’으로 비화한 것에 대해선 “특정 그룹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미 간 경제성장률 차이가 크고, 금리 격차가 크며, 주식시장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걸 알고 있다”며 “이걸 고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기적 수급 요인부터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간 200억달러 상한의 대미 투자 계획이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외환시장에 위협을 주는 대미 투자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양해각서(MOU)를 보면 한은이 외환보유액의 이자·배당 수익으로 자금을 공급할 때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