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로 생각하라 [고두현의 문화살롱]

입력 2025-12-16 17:18
수정 2025-12-17 15:10


“요즘 ‘왜 대답을 안 하느냐’는 말을 자주 들어. 엊그제도 아내가 그러더라고. ‘아유, 답답해. 대답 좀 해요.’” 연말 모임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나도 그래!”라며 맞장구를 쳤다. “택배 상자를 한창 뜯는 중인데 뒤에서 집사람이 ‘아, 왜 대답을 안 해요’라고 해서 아차 싶었지.” 그러고 보니 남의 일만이 아니다. 나이 들면서 감각이 무뎌지고 표현력이 줄어든 탓일까.

표현력이 좋다는 서양 사람도 그런 모양이다. 40대 중반의 미국 남자 러스티는 컴퓨터 엔지니어다. 업무 특성상 말을 많이 하진 않지만, 집에 와서는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아내에게 사랑 표현도 나름대로 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불만이 누적되자 사소한 일에도 티격태격하게 되고, 급기야 부부 사이가 냉랭해졌다.

다정한 마음도 말로 표현해야

러스티는 혼자 끙끙대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는 사랑한다고 말해요. 도대체 또 뭘 더 말해야 하죠?” 그의 하소연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의사는 천천히 책장으로 옮겨 시집을 꺼내더니 한 페이지를 골라 건넸다. 영국 여성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라는 시였다.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헤아려 보죠./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와 넓이와 높이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끝과 이상의 은총을 더듬어/ 가닿을 수 있는 데까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햇빛 아래서나 촛불 아래서나/ 나날의 가장 고요한 일상까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권리를 위해 투쟁하듯 자유롭게 사랑하고/ 칭송을 외면하고 돌아서듯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옛 슬픔에 쏟았던 열정으로 사랑하고/ 내 어릴 적 믿음으로 사랑합니다./ 한때 잃었던 성자들과 함께 잃은 줄 알았던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신의 부름 받더라도/ 죽어서 더욱 사랑하리다.”

시를 읽고 나자 의사가 “이번엔 소리 내어 읽어 보자”고 했다. 묵독(默讀)보다 낭독(朗讀)할 때 의미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라는 질문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날 사랑할까? 얼마나 사랑할까?” 같은 의문부터 갖지만, 이 시인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라며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순간 러스티는 깨달았다. ‘그동안 아내가 내 속을 알 거라고 지레짐작하면서 내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구나. 사랑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서툴렀던 거야!’ 자칫하면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 감정 표현 불능증) 상태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아내에게 사랑을 전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냈고, 이후 부부 관계가 좋아졌다.

혹시 나에게도 알렉시티미아의 잠재 요인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명한 심리학자 게리 채프먼은 사랑을 표현하는 주요 방식으로 ‘사랑의 언어’ ‘함께하는 시간’ ‘마음을 담은 선물’ ‘봉사와 돌봄’ ‘스킨십’을 꼽는다. 그의 저서 <5가지 사랑의 언어>에 따르면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는 상대가 이해하는 언어, 즉 ‘사랑의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 아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내가 이해하는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위해서는 아내의 감정을 아내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사랑의 언어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마음과 몸의 감각은 언어라는 창을 통해 밖으로 표출된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도 ‘감정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이 점을 강조했다. 우리가 숲속에서 곰을 보면 먼저 도망치고 나서 두려움을 느낀다. 즉, 몸이 감정을 이끈다. 매력적인 사람을 봤을 때도 심장이 먼저 두근거린다. 이런 정서적, 신체적 감각을 표현하는 데에는 반드시 언어가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소통과 공감이 이뤄진다.

포옹과 입맞춤도 훌륭한 '언어'

이 같은 공감 속에서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면 관계가 더욱 좋아진다. 선물도 좋은 ‘언어’다. 채프먼은 “아내는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남편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물건을 받고 싶어 한다”며 “중요한 것은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봉사와 돌봄’도 거창한 게 아니다. 아내가 바쁠 때 간단한 요리를 하고, 식탁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쓰레기 버려 주는 게 곧 ‘봉사’라는 사랑의 표현이다.

여기에 부드러운 포옹과 가벼운 입맞춤 등 스킨십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애정 어린 신체 접촉이 행복 호르몬 수치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 아픈 사람의 몸을 안아 일으키고 어루만져 주는 행위가 뇌 위축과 세포 손실을 막는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에게 이런 애정을 표현하면 사랑의 항아리가 가득 차고 활력이 샘솟는다.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를 쓴 시인은 어땠을까. 그녀는 14세 때 폐 질환을 앓고 이듬해 척추까지 다쳐 누워 지내야 했다. 유일한 즐거움은 책 읽고 글 쓰는 것이었다.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한 39세에 그녀는 여섯 살 연하의 무명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편지를 받았다. 병 때문에 구애를 거절하던 그녀는 약 600통의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결혼했다. 이때 남편을 위해 쓴 것이 이 시다.

사랑의 힘으로 병을 극복한 그녀는 43세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다 55세에 남편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평균수명과 병약한 몸으로서는 기적이었다. “나의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을 넘어 “죽어서 더욱 사랑하리다”라는 사랑의 언어가 기적의 원천이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아름다워!”였다. 이 또한 지순한 사랑이 응축된 표현이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차가울수록 한마디 사랑의 언어가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는 세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