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든, 개인적 성장이든 기회는 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걸 잡는 건 결국 현재의 위치에서 성실히 일하며 나를 기꺼이 도와줄 조력자를 만든 사람입니다.”
15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 중앙도서관 1층. 북콘서트 청중석에 유홍림 서울대 총장을 비롯해 교수와 학생 100여 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K뷰티 수출의 주역’ 코스맥스를 창립한 이경수 회장(79)을 보기 위해서다. 서울대 약학과 66학번인 이 회장은 지난 9월 직원들과 함께 저술한 책 <같이 꿈을 꾸고 싶다> 출간을 기념해 이날 모교를 찾았다. 최근 K뷰티 인기를 증명하듯 이날 강연엔 평소의 두 배를 웃도는 신청자(200여 명)가 몰렸다.
코스맥스의 시작은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졸업 후 줄곧 직장생활을 한 이 회장은 1992년 비교적 늦은 나이인 46세에 코스맥스(당시 한국미로토)를 창업했다. 지금은 로레알 등 글로벌 기업도 ‘화장품을 제조해달라’며 찾는 세계적인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이지만, 코스맥스가 걸어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창업 당시는 ‘메이드 인 코리아’보다 ‘메이드 인 재팬’이 좋은 대접을 받는 시기였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 악재도 이어졌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일본 미로토와 기술 제휴를 끊었을 때”라고 했다. 그는 “미로토 측이 한국인 연구소장을 택하든지, 우리를 택하든지 결정하라고 했는데 영원한 하청으로 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로토와 관계를 끊고 자체 연구개발 역량에 집중한 게 지금의 코스맥스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후배 창업자들을 향해 ‘경쟁자를 넘어 조력자를 만들 것’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기간 중국에서 다른 기업들이 철수할 때 코스맥스는 현지 직원 800여 명이 40일간 공장에 자발적으로 남아 제품을 만들었다”며 “사업을 하다 보면 위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때 함께 도와줄 조력자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책의 제목을 ‘같이 꿈을 꾸고 싶다’로 정한 것도 그래서다. 이 회장은 “코스맥스가 여기까지 온 건 회사와 직원, 파트너사들이 같은 꿈을 공유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갔기 때문”이라며 “이젠 미래 세대의 꿈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과 ‘60년 선배’인 이 회장이 함께 K뷰티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격화하는 화장품 시장 경쟁 속에서 K뷰티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소비자 주도 시장이 됐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가장 빠르게,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들어내는 ‘스피드’를 갖춰야 한다”고 답했다. ‘K뷰티가 어떻게 프리미엄으로 나아가야 하느냐’는 질문엔 “중국 등 빠르게 시장이 성숙해지고 있는 국가를 선점하고, 현지 소재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보름이 지나면 여든이지만, 이 회장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회장은 “지난주 프랑스 공장을 보기 위해 출장을 다녀왔고, 중국에선 연구·마케팅·영업이 합쳐진 새로운 본거지도 만들고 있다”며 “K뷰티 열풍이 50년 이상 갈 수 있도록 코스맥스가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