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관광객 바글바글 했는데…매출 반토막 '초비상'

입력 2025-12-15 17:21
수정 2025-12-16 07:38

원·달러 환율 1500원 방어선이 위협받는 비상 상황에서 한국의 ‘달러 파이프라인’ 가운데 하나인 면세산업이 멈춰 섰다.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최대 규모로 몰려왔지만 면세점 매출은 10년 전 수준으로 뒷걸음질 쳤다. 정부와 기업이 달러 확보에 사활을 걸지만 정작 가장 확실한 외화 획득 창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역군의 추락
15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국내 면세점 매출은 73억달러(약 10조원)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6% 급감한 수치다. 연말 특수를 반영하더라도 올해 연간 시장 규모는 2015년(약 81억달러)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면세점은 상품을 판매해 외화를 직접 벌어들이는 ‘수출산업’으로 분류된다. 2019년 연간 21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서비스 수지 적자를 방어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이후 관광 시장이 회복됐는데도 외화 획득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올 들어 10월까지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약 1582만 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2% 늘었다. 이 추세라면 2019년 기록한 사상 최대 관광객(약 1750만 명)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이고 사상 처음 1900만 명도 웃돌 전망이다. 관광객이 급증했지만 면세점 매출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이런 ‘비동조화’ 현상이 나타난 것은 외국인의 쇼핑 트렌드가 크게 바뀌어서다. 과거 면세점 매출을 견인하던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과 단체관광객이 줄고 개별 여행객 비중이 높아지면서 소비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작년 외래 관광객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의 주요 쇼핑 장소로 거리 상점을 꼽은 비율은 49.6%에 달했다. 반면 공항 면세점 이용률은 14.2%에 그쳐 2019년(33.5%) 대비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외국인 관광객이 면세점에서 고가 명품을 구매하는 대신 거리의 CJ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 등 이른바 ‘올다무’에서 가성비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빈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기업도 못 버티고 구조조정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자 대기업 면세점들도 사업 축소에 나섰다. 신라, 신세계 면세점은 최근 인천국제공항 면세 사업권을 조기 반납했다. 계약 해지에 따른 위약금만 각각 1900억원 이상 납부해야 하지만 대규모 적자를 감당하는 것보다 철수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시내 면세점 사업 축소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면세점을 축소했고, 현대면세점은 동대문점을 폐점하고 무역센터점 규모를 줄였다. 구매력이 낮은 관광객만 늘어나면서 장사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면세점 5곳은 지난해 3000억원 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문제는 국내 면세점의 경쟁력 약화가 해외 자본의 시장 잠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1위를 다투는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인천공항 입찰 등 국내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면세산업이 외화 획득의 핵심 인프라인 만큼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호황기에 설계된 현재의 특허수수료 체계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유동성을 확보해 글로벌 입찰 전쟁에서 버틸 수 있도록 특허수수료 감면 등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국가적인 외화벌이 창구를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