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가 수 년간 계속되면서 프랑스 와인 생산량이 크게 줄고 있다. 여기에 미국 및 중국의 관세부과, MZ소비자의 취향 변화까지 맞물리면서 프랑스 3대 산업 중 하나인 와인산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프랑스 당국은 포도 농지를 솎아내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섰다.◇“MZ세대, 와인보다 맥주”
12일(현지시간)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 와인 생산량은 약 3600만 hl(1hl=100L)로 최근 5년 평균 대비 1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와인 역사상 ‘최악의 해’로 기록됐던 2024년과 비슷한 수준의 생산 규모다. 프랑스 최대 와인 재배 지역인 보르도 지역의 수천 개의 포도주 농장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영국 더타임스는 “최근 5년 연속으로 폭염·가뭄이 겹치면서 프랑스 와인 산업이 사실상 시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프랑스 와인 산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와인용 포도는 온도·습도 등 기후 조건에 따라 성분이 변할 정도로 예민하다. 프랑스 INRAE(농림축산식품환경연구소) 연구팀은 지구 온난화로 이탈리아, 프랑스 등 기존 유명 와인 생산지에서 더 이상 와인을 공수할 수 없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와인의 소비 수요 자체도 줄어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유럽 와인에 대한 15% 관세 부과가 미국 내 수입 와인의 수요를 축소시켰다. 주류 데이터 분석업체인 IWSR에 따르면 미국에서 소비되는 와인(2024년 기준)은 2019년보다 3% 감소했으며, 2029년까지 4% 더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IWSR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격 거품으로 수요가 감소하기도 했지만 관세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중국 수출 물량도 줄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 보르도 지역 와인의 대중국 수출량은 2017년 이후 절반으로 줄었다. 보르도 ‘그랑크뤼’급 와인의 대중국 수출량은 10년 만에 최저치(2024년 기준)를 기록했다. 가디언은 “중국은 지난 7월 이후 유럽연합(EU)에서 수입되는 코냑·브랜디 등 와인 기반 증류주에 32.2%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며 “프랑스 와인업계는 중국 수요 둔화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미국발 관세 위협까지 겹치며 2개의 핵심 시장이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젊은 소비자들의 와인에 대한 선호도가 변한 것도 또다른 문제다. 프랑스앵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와인 소비량은 지난 60년 사이 70% 줄었다. 1960년대에 1인당 연간 평균 120L의 와인을 마셨으나 최근엔 약 40L 수준이다. 대형 마트의 레드 와인 판매량도 지난 3년 새 15% 감소했다. 프랑스앵포는 “젊은 층은 와인보다 맥주를, 와인을 마시더라도 레드보다 화이트나 로제 와인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전했다.◇재고 와인, 바이오연료 가능성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포도 농가 정리에 나선 상태다. 정부는 포도 농가들이 포도나무를 뽑는데 ha당 최대 4000유로(약 586만원)의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전체 예산을 1억2000만 유로로 책정했다. 보조금은 2024~2029년 포도 재배 허가를 포기하거나 신규 신청을 포기한 농가에 지급된다. 르몽드는 “코르비에르 등 프랑스 남부 산지에서 이미 전국 2만7000ha 농지가 보상금을 받았고, 앞으로 3만5000ha 농지에서 추가 뽑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조금은 팔리지 않은 와인을 증류해 바이오 연료로 전환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프랑스 포도재배 농가들은 포르투갈이 작년에 혜택을 받았던 ‘농업위기 예비금’을 받아 이같은 증류 프로그램 자금으로 활용하기를 원하고 있다. 당시 포르투갈은 재고 와인이 급격히 늘어나자 유럽위원회로부터 1500만유로의 예비금을 받았고, 와인을 증류해 소독제 및 에너지(바이오연료) 등 비(非)음용 알콜로 변환시켰다.
다만 프랑스에서 와인산업은 높은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포기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프랑스 와인산업은 연 920억 유로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항공우주 및 명품 산업과 함께 ‘3대 산업’으로 꼽힌다. 프랑스에서 직간접적으로 44만 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EU투데이는 “포도 농가들은 문화유산이 사라져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재배자, 상인, 유통업자 등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새로운 협력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