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에 엔비디아의 고성능 인공지능(AI) 칩 ‘H200’ 수출을 허용하자 미 의회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뿐 아니라 집권 공화당에서조차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해치는 결정”이라며 반기를 드는 분위기다. H200은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블랙웰’보다 한 세대 전 모델이지만 현재 중국에 수출되는 H20보다 여섯 배가량 성능이 좋은 칩이다.
◇H200 수출 금지 법안 발의14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하원 미중경쟁특별위원회의 존 물레나 위원장(공화당)은 행정부가 H200의 대중 수출 허용 결정을 내린 근거에 의문을 제기했다. 물레나 위원장은 최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국 기업들에 최첨단 칩 판매를 승인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시절 달성한 특별한 전략적 우위를 약화할 위험이 있다”며 “중국이 자국산보다 더 앞선 칩을 수백만 개 구매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AI산업 내 미국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SNS에 “미국이 국가 안보를 강력히 유지할 수 있는 조건으로 중국에 H200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국가 안보를 보호하고 미국 일자리를 창출하며 AI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며 대중 수출을 옹호했다. 하지만 물레나 위원장은 화웨이가 개발한 인공지능 반도체 910C 칩이 중국 본토가 아니라 대만 TSMC에서 생산됐고, 이게 중국 AI 칩의 성능을 끌어올린 사실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의 결정에 따라 앞으로 화웨이는 차세대 칩인 910D를 TSMC에서 생산할 수 없다. 결국 910D 칩이 이전 910C 칩보다 낮은 성능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그동안 중국을 미국 AI 칩에 길들이기 위해 H200 칩의 중국 수출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엔비디아 H200 수출을 금지하면 화웨이 같은 기업이 오히려 독자 칩을 생산해 엔비디아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엔비디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수출 승인 후 “미국 상무부의 심사를 거친 승인된 고객에게 H200을 제공하는 것은 미국에 매우 유익한 균형점”이라고 밝혔다. 반면 H200 수출과 함께 TSMC를 통한 칩 생산까지 막으면 중국의 AI 칩 발전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게 물레나 위원장 측 논리다.
미 의회에선 민주·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H200 중국 수출을 허용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화당 소속 피터 리케츠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원장과 민주당 소속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 등 6명은 최근 H200과 블랙웰의 중국 수출을 30개월 동안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상원 은행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은 “트럼프의 (H200 수출) 발표 몇 시간 전 법무부가 5000만달러 규모의 H200 밀수 네트워크 단속을 발표한 것은 모순”이라며 러트닉 장관에게 오는 19일까지 ‘H200 수출 규모’ ‘H200 군사적 악용 가능성’ 등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美 AI 차르 “中, 반도체 자립 원해”엔비디아는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반도체 수출 규제로 중국 매출 비중이 올해 13.1%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는 중국 수출을 승인받은 H200 생산을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H200 구매를 승인하지 않아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10일 긴급 회의를 열어 H200의 중국 반입을 허용할지 논의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AI 차르’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과학기술자문위원장은 이날 블룸버그테크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우리 칩을 거부하고 있다”며 “이는 그들이 반도체 자립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