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사진 수정=포토샵'이었는데…40년 1위 기업도 결국 [선한결의 이기업왜이래]

입력 2025-12-12 08:00
수정 2025-12-12 08:39


‘포토샵’을 앞세워 1990년대부터 시장을 호령해온 사진·영상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의 주가가 시장 예상을 소폭 웃돈 실적을 내고도 하락했다. 어도비는 자사 AI 기능 수요가 탄탄하다고 자평했지만 투자자들은 이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AI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디자이너·영상 편집자 등이 대체 서비스를 찾아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영향이다. 시장예상 웃돈 실적에도 주가는 '하락'어도비가 4분기 실적을 발표한 1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에서 어도비는 정규장 동안 0.35% 하락했다. 실적발표 후 시간외 거래에선 0.80% 추가로 내렸다. 월가의 기존 컨센서스(시장 평균 전망)을 소폭 웃도는 매출 결과와 내년 전망을 내놨는데도 투심을 잡지 못한 모양새다.

어도비는 이날 4분기 매출이 61억9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늘었다고 밝혔다. 기존 시장 예상치(61억1000만달러)를 1.31% 웃돈다. 4분기 조정 주당순이익(EPS)는 5달러 50센트로 컨센서스를 10센트 웃돌았다.

영업이익은 28억2000만달러, 순이익은 22억9000만달러를 냈다. 어도비는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31억6000만달러로 자사 기준 역대 최대치”라며 “올 4분기 자사주를 720만주 사들였고, 올들어선 총 3080만주를 매입했다”고 했다.

2025 회계연도 기준으로는 연간 전체 매출이 237억7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1% 올랐다. 당초 애널리스트들은 236억9000만달러를 예상했다. 연간 조정EPS는 20달러94센트로 전년동기 대비 14% 상승했다.
포토샵·프리미어 구독 매출도 상승어도비의 실적을 뜯어보면 지난해 대비 성장은 확실하다. 올해 어도비의 전체 구독 매출은 228억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12% 늘었다. 포토샵, 프리미어,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유료구독하는 이들로부터 나오는 매출이다.

어도비는 전체 구독 매출 중 크리에이터와 마케팅전문가 등 고객군으로부터 163억달러가, 일반 소비자와 비즈니스 전문직 고객군으로부터 65억달러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말 기준 어도비의 연간 반복매출(ARR)은 252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5% 올랐다.

구독료와 일회성 사용료를 아우르는 매출도 부문별로 올랐다. 포토샵 등 디지털 미디어 부문 연매출은 176억5000만달러로 전년대비 11% 늘었다. B2B 마케팅·분석 서비스인 어도비 익스피리언스매니저(AEM), 어도비 애널리틱스 등을 포함하는 디지털경험 부문 매출은 15억2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9% 늘었다.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는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어도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어도비가 제공하는 AI 기반 도구 수요도 늘고 있다”고 했다. 내년 실적 전망도 시장 기대보단 높은 수준으로 제시했다. 어도비는 이날 내년 연간 총매출을 259억~261억달러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시장 컨센서스 258억9000만달러를 최대 0.81% 웃돈다. 내년 1분기 매출은 62억5000만~63억달러로 예상했다.
업계선 “요즘 ‘누끼’ 딸 때 누가 포토샵 쓰나”하지만 시장 반응은 시원찮다. 어도비 주가는 올들어선 22.19% 하락했다.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가 18.71% 오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마켓워치는 “실적이 암울한 투심을 되살리기엔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IT·디자인업계 안팎에서 어도비가 AI 기술발전 직격타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부상한 영향이다. 어도비는 1990년대부터 디자인 소프트웨어업계에서 글로벌 1위를 지켜왔다. 어도비의 대표 프로그램 포토샵은 한동안 ‘사진 수정·합성’의 동의어처럼 쓰였을 정도다.

하지만 이젠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프리미어프로 등을 통해 전문가들이 해온 작업을 AI 툴로 쉽게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미지에서 배경을 제외하고 원하는 부분만 오려내는 이른바 ‘누끼 따기’나 이미지 합성 작업이 대표적이다. 이전엔 포토샵을 써야 작업할 수 있었지만 이젠 스마트폰 기본 AI 기능만으로도 작업을 할 수 있다. 기성 소프트웨어 수요가 그만큼 사라진다는 얘기다. 투자은행 에버코어의 커크 마테른 애널리스트는 앞서 "어도비가 AI발 '존재적 위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기능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고 했다.


모건스탠리도 앞서 생성형AI가 어도비의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 등의 시장 지배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능 진입장벽이 무너지면서 저가형 AI 도구로도 웬만한 기능을 쓸 수 있게 되면 어도비가 자사 소프트웨어의 구독료를 인하할 수 밖에 없다는 게 모건스탠리의 분석이다. 견제구 발표…“챗GPT서 포토샵 무료 사용”어도비도 나름의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엔 B2B 마케팅에 특화된 AI 에이전트 제품군을 강화했다. 자사 생성형 AI 모델을 기업이 자체적으로 커스터마이징해 쓸 수 있는 플랫폼 ‘어도비 AI 파운드리’도 출시했다.

실적발표 전날엔 챗GPT와의 협업도 공개했다. 포토샵과 애크로뱃, 어도비 익스프레스 등 자사 소프트웨어 3종을 챗GPT 대화창에서 직접 구동할 수 있는 기능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최근 생성형 AI 도구 시장에서 부쩍 발을 넓히고 있는 구글 등에 대한 견제 조치로 풀이된다.

이번 협력으로 챗GPT 이용자들은 별도의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무료로 대화창에서 포토샵 기능을 활용해 사진을 편집할 수 있게 됐다. 단 어도비의 이미지 생성 AI 앱 '파이어플라이'는 이번엔 포함되지 않았다.

팸 클라크 어도비 부사장은 "챗GPT의 주간사용자는 8억명에 달한다"며 "어도비의 영향력을 이들에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포토샵 등을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기능을 소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이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능이 저가 상품화되면서 기존 고가 소프트웨어 제품군 수요는 더 줄어들 수도 있어서다. 롭 올리버 베어드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어도비의 소프트웨어·AI 도구 등의 사용량이 실제로 늘어날지, 그리고 이를 통해 수익을 늘릴 수 있을지를 주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