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16일 12:2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인수전은 원매자들의 인수 의지가 강했던 만큼 막판으로 갈수록 가격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운용사의 실질적 기반인 연기금·공제회 등 핵심 출자자(LP)는 주요 논의에서 뒷전으로 밀린 채 매각 절차가 진행되면서, 업계에서는 LP 이탈 우려가 불거졌다. 전 경영진의 이해상충 의혹 등으로 이미 흔들린 신뢰를 봉합하기도 전에 매각이 가격 중심으로 질주한 것이 핵심 출자자인 국민연금이 자산 이관을 본격화하는 데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이지스운용 경영권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 대상자로 싱가포르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를 선정했다. 힐하우스는 최고가인 1조1000억원을 써내며 각각 1조500억원과 9000억원대 중반을 써낸 흥국생명과 한화생명을 제쳤다. 매각 대상은 최대주주 손화자 씨, 조갑주 전 이지스운용 대표 등 지분을 합쳐 최대 98.8%로 사실상 회사를 통째로 넘기는 셈이다.
가격이 치솟은 건 본입찰 이후였다. 매도인 측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으로 추가 가격·조건 제시를 받으면서 경쟁이 한 차례 더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힐하우스가 본입찰에서 9000억원대 중반을 제시했다가, 막판에 2000억원 안팎을 얹어 1조1000억원을 써낸 것이다. 흥국생명은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는 설명을 믿고 최고가를 써냈는데, 결과적으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인수전이 과열될수록 이지스운용의 실질적인 기반인 LP는 딜에서 멀어져갔다. 이지스운용은 2010년 창립 이래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및 주요 공제회 자금을 기반으로 급성장했다. 총 운용자산 65조원 가운데 국민연금 자산만 평가액 기준 7~8조원에 달한다. 통상 대형 자산운용사 기업 인수합병(M&A)에서는 후보군이 좁혀지는 단계부터 주요 LP와 접촉해 지배구조 변경의 파장을 점검한다. 이번 딜에서는 그 과정이 충분치 않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로 매각 과정에서 원매자별 인원 감축 계획이나 해외 자본이 최대주주가 될 경우 운용 기조·내부통제 체계가 연기금 측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이에 대해 국민연금 등이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 마곡 원그로브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해상충 의혹이 제기된 조 전 대표가 본입찰을 약 한 달 앞두고 매각에 동참해 딜의 키를 쥐는 모양새도 LP를 자극했다. 연기금 관계자는 “LP는 수익률뿐 아니라 운용 독립성과 핵심 인력 승계, 리스크 관리 장치를 본다”며 “그림이 먼저 공유돼야 하는데 순서가 거꾸로였다”고 말했다.
LP 공백은 거래 종결에도 변수로 꼽힌다. 자산운용사 최대주주 변경은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한다. 분쟁이 붙은 상황에서 LP까지 '자산 회수'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우려를 공식화하면서 심사 일정과 강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운용업은 신뢰 산업”이라며 “가격만 올려서는 딜이 닫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이지스운용에 내준 자산 회수를 추진하면서 시장의 모든 시선은 다시 LP로 돌아왔다. 설령 이지스운용의 밸류에이션이 확 낮아진 이후 경영권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LP와의 신뢰 회복과 운용 철학 정리가 뒤따르지 않으면 펀딩과 인력 양측에서 균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