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8개 대기업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기업 라피더스에 교세라 등 22개 기업이 가세한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총력전에 나선 가운데 일본 간판 기업 30곳이 ‘반도체 연합군’으로 뭉친 것이다. 일본 정부 지원에 민간 출자까지 더해지면서 라피더스는 2027년 2나노미터(㎚·1㎚=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에선 인공지능(AI) 칩 생산을 추진한다. ◇“日 반도체 부활 체제 갖춰”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추진하는 라피더스에 일본 기업 22곳이 새롭게 출자한다. 신규 출자사는 혼다, 후지쓰, 캐논, 후지필름, 세이코엡손, 우시오전기, 교세라 등 22곳이다. 상당수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공급사다. 라피더스 공장이 있는 홋카이도에서 원자력발전 등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홋카이도전력, 일본 3대 은행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도 가세했다. 소니그룹 등 기존 주주는 추가 출자를 한다.
라피더스는 연내 각 사와 정식으로 합의하고 내년 3월까지 출자를 받는다. 각 사 출자액은 5억~200억엔으로 전망된다. 후지쓰, 소니그룹은 각각 최대 200억엔 출자를 검토 중이다. 기존 주주인 미쓰비시UFJ은행 등 3대 은행과 일본정책투자은행은 최대 합계 250억엔을 출자한다. 3대 은행은 출자와 별도로 최대 2조엔 규모 대출도 실시한다. 니혼게이자이는 “협상 중인 기업도 있는 만큼 출자 기업과 총출자액은 향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라피더스는 주주사가 30곳으로 늘면서 올해 목표로 삼았던 1300억엔 규모 민간 출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한 체제가 갖춰졌다”고 평가했다. 2022년 설립된 라피더스는 도요타와 NTT, 소프트뱅크, 소니그룹 등 8곳이 총 73억엔을 출자했다. 2027년 홋카이도 지토세 공장에서 2나노 반도체를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라피더스는 2031년까지 7조엔 이상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민간 출자로 1조엔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일본 정부는 지난 11월 라피더스에 2026~2027년 1조엔을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누적 지원액은 2조9000억엔에 달한다. 니혼게이자이는 “라피더스는 양산 기술 개발과 고객 개척 단계에 있다”며 “출자에는 리스크와 주주에 대한 설명 책임도 따르는 만큼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짚었다. ◇TSMC 日 공장은 AI 반도체 추진대만 TSMC는 구마모토현에 건설 중인 2공장에서 4나노 반도체 양산을 추진한다. 당초 계획은 통신기기에 적합한 6~40나노 제품 생산이었는데, AI 반도체의 주류로 떠오른 4나노로 방향을 튼 것이다.
TSMC는 지난해 12월 일본 첫 제조시설인 구마모토 1공장을 가동했다. 차량용 반도체 수요 등에 대응해 12~28나노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는 “글로벌 전기차 판매 부진 등으로 반도체 시장 회복이 지연되면서 1공장 가동률은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제2공장이 4나노 제품에 대응하면 AI 반도체 제조가 용이해진다”고 설명했다.
10월 착공한 2공장은 2027년 가동할 예정이었지만 계획 변경에 따라 가동이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TSMC는 니혼게이자이에 “일본 내 프로젝트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 세부적인 건설 작업과 실행 계획을 파트너 기업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 엔비디아 등이 주도하는 AI 반도체는 각국·기업 간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신증설 계획이 잇따르는 일본도 AI 반도체 확보가 큰 과제로 떠올랐다. 니혼게이자이는 “AI 반도체는 모든 기술 혁신의 기반이 되는 만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내 공급망 구축이 필수”라며 “(TSMC 계획이) 실현되면 AI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으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TSMC 구마모토 1·2공장 총투자액은 225억달러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총 1조2000억엔을 지원할 방침이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