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누워 있다니? 불이 어떻게 누울 수 있을까?’
‘누워 있는 불’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이는 젊은 시절 우리나라 국가대표 스키 선수로 활동한 단국대 건축학과의 고(故) 김남응 교수다. 그가 1991년 독일 다름슈타트대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서 있는 불과 누워 있는 불(Stehendes und Liegendes Feuer)’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온돌이 불을 구부려 사용하는 독창적인 난방 방식이며,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에 서양의 난방 방식과 비교해 온돌의 우수성을 조명하는 내용을 박사 논문으로 썼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온돌 난방
잘 알려진 대로 서양의 난방은 벽난로 방식이다. 불이 사람과 함께 수직으로 서 있는 셈이며, 직접적인 전도열로 난방이 이뤄진다. 그러나 따뜻한 공기가 위로 올라가는 특성 탓에 바닥은 따뜻하지 않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벽난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벽난로는 집의 중심 공간 역할을 했다.
반면, 바닥 난방인 온돌을 사용해 온 한국은 바닥의 구들이 뜨거운 불에 달궈져 오랫동안 열기를 품고 뿜어내는 복사열 방식이다. 바닥이 덮여 있기 때문에 공기가 자연스럽게 상승하며 방안 전체가 따뜻해진다. 바닥이 따뜻하니 의자를 놓고 생활하기보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는 것이 훨씬 편하다. 좌식이 더 익숙한 것이다. 바닥 난방은 추운 시베리아 지방의 ‘갱’이라는 부뚜막 같은 시설에서 유래했지만, 그것을 바닥 난방 전체로 발전시킨 것은 우리나라다. 고구려·옥저 지역의 유구가 남아 있고, 고려 시대에는 건물 전체에 온돌을 깐 터가 발굴되기도 했다. 바닥 난방 지켜온 건축가들온돌 난방에도 위기는 있었다. 개화기 이후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문화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식 주택형이 도입됐다. 이들 주택의 난방은 바닥 난방이 아니라 벽난로와 라디에이터 방식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 건축가들은 전통 난방 방식인 온돌을 매우 효율적인 난방법이라고 판단해 문화주택에도 난방만큼은 한국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때 건축인들이 번거로운 온돌 방식을 버리고 서양식 난방을 선택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늘날 아파트에서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도록 해주는 온돌식 바닥 난방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나무를 때던 바닥 난방은 6·25전쟁을 거치며 산림이 훼손돼 석탄 연료(19공탄)로 바뀌었고, 연탄가스 중독 문제가 오랫동안 골칫거리였다. 이후 온수를 파이프로 보내는 방식으로 열원을 분리하면서 보다 쾌적한 바닥 난방 시스템으로 개선됐다.
지금은 재건축됐지만, 1970년대 개발된 잠실 1·2단지 아파트는 아파트 구조임에도 부엌에서 연탄을 때는 아궁이 구조로 설계돼 아파트 바닥이 수평이 아니라 부엌이 반 층 정도 낮았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재래식 온돌 아파트였다. 근대 들어 서양에 우리나라의 바닥 난방 방식이 전해진 계기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일본 제국호텔을 설계하면서다. 그는 일본에 머무는 동안 한국식 온돌을 경험했고, 이후 미국에서 바닥 난방을 건물에 적용했다. 불을 보는 방식, 문화에도 영향 미쳐우리가 불을 눕혀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한 것처럼 로마 시대에도 온돌과 비슷한 바닥 난방 방식인 ‘하이포코스트(Hypocaust)’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주로 목욕탕의 물을 데우고 실내 온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됐으나, 로마는 겨울이 그리 춥지 않아 주거 공간의 난방 방식으로는 널리 확산하지 못했다. 로마제국 멸망과 함께 바닥 난방 기술과 문화도 사라졌고, 유럽은 10세기께 연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벽난로가 발명되기 전까지 난방 없이 지내거나 원시적인 모닥불을 이용했다고 한다.
‘불’이라는 삶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접하는 방식은 문화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벽난로를 통해 수직으로 서 있는 불을 직접 바라보며 따뜻함을 느끼는 서양의 난방 방식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직접적인 관계를 중시하게 했다. 이는 사람들 간 대화에서도 주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문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반면, 불의 흐름을 구부려 바닥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는 온기를 즐겨온 우리의 온돌 방식은 대화에서도 주제를 빙 둘러 표현하는 간접적인 의사 전달 방식, 즉 ‘돌려 말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