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웹소설 시장에 민간 주도의 자율 규제 장치가 처음 등장했다. 콘텐츠 표현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업계가 정부 개입에 앞서 선제적으로 해법을 내놨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웹툰과 웹소설 같은 스토리형 콘텐츠에 대한 자율 정책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12일 밝혔다. 기존 인터넷 게시물·검색어 등 이용자 생산 콘텐츠에 머물던 심의 영역을 창작 표현물로 처음으로 확대했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창작자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혐오 표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심의 과정에 창작자·이용자·플랫폼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자율 규제는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우선 적용된다. 향후 두 플랫폼은 KISO의 심의 결과에 근거해 컷 수정, 게재 중지 등 후속 조처를 할 수 있게 됐다. 플랫폼 업체들은 이번 조치를 ‘완충 장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최근 몇 년간 콘텐츠 내 특정 장면이 사회적 논쟁으로 번지고, 정치권과 정부가 심의 강화 방침을 공론화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일명 ‘퐁퐁남’ 논란이다. 특정 웹툰 속 남성 캐릭터 대사가 여성 혐오 논쟁으로 비화하며 국회 질의와 교육계·시민단체 문제 제기로 확산했다. 당시 플랫폼이 수정에 나섰음에도 정치권에선 웹툰 심의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등 규제 일변도 주장이 나왔다.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업체들은 정부가 직접 기준을 마련할 경우 규제가 경직돼 창작 위축이나 플랫폼 책임 과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이번 KISO의 자율 심의는 플랫폼과 창작자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조정할 수 있어 이런 위험을 줄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KISO 스토리형 콘텐츠 특별소위원회를 이끄는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창작자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용자를 설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KISO는 앞으로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심의하고, 플랫폼과 창작자 의견을 반영해 기준을 지속해서 보완해나갈 계획이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