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성과 똑같은데 여성 재택근무자엔 '낮은 고과'…왜? [김대영의 노무스쿨]

입력 2025-12-15 07:30
"동료가 집이 멀어 재택근무를 자주 하는데, 급한 업무 때문에 채팅을 보내면 매번 1시간~1시간30분 뒤에나 답이 옵니다. 저도 집이 멀지만 눈치 보느라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동료는) 편하게 일한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나요."

최근 한 직장인 커뮤니티엔 이 같은 한 직장인 하소연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근무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상당수 불거졌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제대로 일하고 있는 것 맞느냐"는 의구심이 나오면서다. 동일한 성과여도 재택근무자에 패널티…"덜 헌신적"이 같은 시선은 재택근무자에 대한 성과 평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박주원 미국 유타대 행정학과 교수가 최근 공공행정 분야 국제 학회지 '퍼블릭 매니지먼트 리뷰'를 통해 발표한 논문을 보면, 재택근무는 실제 인사 평가 과정에서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

박 교수는 한국 정부·지자체·공기업에서 일하는 직원 9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실험' 방식으로 이를 입증했다. 실험은 특정 상황이 주어지는 역할을 부여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응답자들은 "당신은 아래 직원의 상사이며 성과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는 상황을 부여받았다. 이들에겐 모두 동일한 성과 내용이 공유됐다. 이 문서들은 성별과 재택근무·사무실 근무 여부만 달랐을 뿐, 똑같은 성과를 담고 있었다.

사무실 근무자 평균 점수는 57.96으로 54.78점을 나타낸 재택근무자들보다 3.18점 더 높았다. 여기엔 한국 공공부문의 조직 문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박 교수는 2018년 발표된 논문을 인용해 한국 공공부문 조직 문화를 △유교적 위계 △집단주의 △대면 중심 △장시간 근무로 요약했다. "오래 보이는 사람이 충성스럽다"는 인식이 재택근무자를 '덜 헌신적이고 덜 생산적'인 직원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성과 자체는 완전히 동일한데도 재택근무자에게 유독 낮은 점수를 주는 패턴이 일관되게 나타났다"며 "실제 성과와 무관하게 사무실에 없으면 점수가 깎이는 '재택근무 패널티'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재택근무자 불이익 더 커…실무적 대안은?게대가 여성에게 더 심각한 패널티가 부여됐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여성 재택근무자 점수는 53.1점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직원(58.04점)보다 4.94점 더 낮게 평가됐다. 남성의 경우 재택근무자와 사무실 출근 직원 점수가 각각 56.46점, 57.88점으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 간 성별에 따른 점수 차는 재택근무 상황에서만 발생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근무자들만 놓고 볼 경우 별다른 성별 차이가 포착되지 않았는데, 재택근무 상황이 되면 여성이 불리한 성과 평가를 받는 구조가 드러났다.

특히 평가자가 남성일 경우 여성 재택근무자에게 더욱 큰 페널티를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리자일수록 성별 편향이 강화되면서 여성 재택근무자가 타격을 받았다는 얘기다.

박 교수 분석을 종합하면 재택근무자가 일터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될수록 비공식적 소통 부족, 업무 태도 파악의 어려움 등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경우 관리자는 "재택근무자가 일에 덜 집중한다"고 추론하게 된다.

여성 재택근무자가 더 큰 피해를 보는 이유는 '여성'과 '재택근무'란 특성이 결합되는 데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여성에게 돌봄 책임이 있다고 보는 인식이 강해 '여성이 재택근무를 할 경우 업무 집중도가 높지 않다'고 추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택근무자에 대한 성과 평가가 왜곡되는 결정적 요인이 관찰 부족, 대면 상호작용 부족 등으로 요약되는 만큼 가시성 높은 협업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가령 정기적 화상 회의나 중간 점검·보고 체계화 등이 대안으로 꼽힌다. 재택근무자도 참여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춰 물리적 공간의 부재를 대체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인적자원(HR) 실무 현장에선 근무 형태가 다양화하는 추세를 고려해 '얼마나 자주 보이는지'보다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는지'에 집중하는 평가 기준이 필요하단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 교수는 "출근 여부는 성과를 판단하는 타당한 기준이 될 수 없다"며 "평가 기준의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재택근무 제도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