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주요 대단지에서 기존 계약을 연장해 전·월세로 거래하는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대출 규제와 ‘10·15 부동산 대책’에 따른 실거주 의무 강화로 매매 시장 문턱이 높아지고 전세난이 심화하자 자연스레 재계약 비율이 확대되고 있다. 내년 서울 입주 물량 급감까지 예고되면서 신규 실수요자의 ‘전세 구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증액 없이 재계약 사례도
1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에서 이달 들어 총 8건의 전·월세 계약이 체결됐다. 이 가운데 7건(87.5%)이 갱신 계약이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재계약한 사례도 3건 있었다. 올해 1월에는 이 단지의 전·월세 계약 총 77건 중 51건(66.2%)이 신규 계약이었다. 최근 들어 갱신 계약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등 임대차 시장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의 이달 전·월세 거래를 살펴봐도 17건 중 12건(70.6%)이 갱신 계약이었다. 옆 단지인 트리지움의 갱신 계약 비중도 66.7%(9건 중 6건)나 됐다. 통상 계약을 연장하면 보증금이나 월세를 조금씩 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리센츠 전용면적 124㎡에선 기존 조건(보증금 14억원, 월세 100만원)을 그대로 유지하며 재계약을 맺은 사례도 있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64.3%),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64.3%),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50%), 양천구 신정동 목동14단지(50%) 등 다른 지역 인기 대단지에서도 갱신 계약 비중이 절반 이상을 나타냈다. 10·15 대책 이후 갱신 계약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10·15 대책 직후인 지난 10월 16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서울에서 갱신계약요구권을 사용한 건수는 6737건으로, 전년 동기(4930건) 대비 36.7% 증가했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대출 규제와 서울 전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아파트 매수가 여의찮아진 데다 전셋값 자체도 계속 오르고 있다”며 “수요자 사이에선 이사하는 것보다 재계약을 해 2년 정도 더 지켜보자는 심리가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기존 세입자를 선호할 유인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1주택자의 전세대출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포함되면서 자금력을 갖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내년 ‘입주 절벽’ 리스크도재계약 증가세 속에 전세 물건이 더욱더 잠기며 실수요자의 고충은 더 커질 것이 우려된다. 이미 시중 전세 물건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업체 아실에 따르면 올해 초 3만 건을 웃돌던 서울 전세 물건은 최근 2만5000건 수준으로 약 16%(5만여 건) 줄었다.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에 활용되는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따른 실거주 의무 부여, 아파트 선호 지속 등의 영향으로 기존에 ‘전세 공급자’ 역할을 하던 갭투자자와 다주택자, 분양 계약자 등의 물건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급 절벽’ 리스크도 심화하고 있다. 아실에 따르면 올해 서울 입주 물량은 4만6353가구였는데, 내년엔 4165가구로 급감한다. 2027년엔 1만306가구가 공급될 것으로 예상됐다. 업계 관계자는 “공급 부족 등 구조적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재 체결된 전세 계약 갱신 시점이 만료되는 2년 후 집주인이 그간 올리지 못한 임대료를 한꺼번에 반영한다면 전셋값이 더욱 크게 뛸 수밖에 없다”며 “당분간 전세시장 불안과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