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0억弗 수주잔액에도…오라클에 실망한 월가

입력 2025-12-11 17:33
수정 2025-12-12 00:47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이 다시 ‘AI 거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작년보다 개선된 분기 실적 발표에도 막대한 투자 부담 우려를 덜어낼 만큼 빠른 이익 증가 속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클라우드 성장 기대 밑돌아
오라클은 10일(현지시간) 장 마감 이후 2026회계연도 2분기(9~11월)에 매출 160억6000만달러, 조정 영업이익 67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두 수치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14%, 10% 급증했지만, 시장 예상치를 1% 정도 밑돌았다.

최근 성장을 견인해 온 클라우드 사업은 예상 수준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오라클 클라우드 부문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34% 증가한 79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 중 연산용 데이터센터를 제공하는 클라우드 인프라 사업 매출은 68% 급증한 40억8000만달러를 나타냈다.

오라클은 세계 최초로 상용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판매한 기업 간 거래(B2B) 소프트웨어업계의 공룡이다. 하지만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클라우드 사업을 통해 급격히 성장하는 동안 고성장 시장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오라클은 지난해부터 AI 클라우드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시장을 독점 수준으로 점유하고 있는 자신들의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과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장착한 데이터센터를 클라우드 상품으로 판매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다는 구상이다. ◇예상보다 빠른 부채 증가전문가들은 AI 클라우드 기업으로의 성장 계획이 아직까진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클라우드 매출이 회사 예상치(가이던스)를 넘어 순항하고 있지만 GPU와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데이터센터 건설 비용도 함께 치솟은 탓이다. 지난 2분기 자본지출은 120억달러로 시장이 예상한 82억5000만달러를 50% 가까이 초과했다. 잉여현금흐름도 10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오라클은 실적 발표 과정에서 이번 회계연도 자본지출 전망을 350억달러에서 500억달러로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오라클이 비용 및 부채 통제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용등급은 ‘BBB’로 투자 등급 최하단에 가까워졌고, 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상승세다. 린지 타일러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오라클의 총부채가 3년 안에 2900억달러까지 불어날 수 있다”며 “더 명확한 자금 조달 계획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CDS 프리미엄은 (현재 1.2%포인트 수준에서) 2%포인트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영진이 ‘성장 보증수표’로 내세운 고객과의 계약 잔액이 특정 고객사에 편중돼 있고, 매출로 연결되는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도 나온다. 2분기 말 기준 오라클의 계약 잔액은 5230억달러다. 지난 9월 오픈AI와 계약한 3000억달러가 과반을 차지하지만 매출은 2027년부터 발생한다. 커크 매턴 에버코어 애널리스트는 “9월과 비교해 주식시장이 오픈AI의 경쟁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시장은 오라클이 내후년 오픈AI발 수요 부진 때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덕 케링 오라클 재무 담당 부사장은 “시장 예상보다 훨씬 적은 자금을 차입해도 (데이터센터 확대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회사채 발행과 은행 대출 등 다양한 자금 조달 수단이 있고, 반도체를 구매하는 대신 임대하거나 아예 고객이 직접 데이터센터에 설치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케링 부사장은 “신용등급을 투자 적격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실적 발표 이후 시간 외 매매에서 오라클 주가는 10% 넘게 급락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