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를 넘나드는 고환율이 이어지자 국민연금이 최근 전략적 환헤지를 재가동했다. 내년 한국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되면 원화 가치가 오를 가능성을 감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 확대 속도를 감안해 해외채 발행을 허용하고, 외화 선조달 규모를 늘리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외환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대책을 모두 검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본지 12월 1일자 A1,4면 참고 ◇원달러 환헤지, 시장 예상보다 낮아9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전략적 환헤지를 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환헤지 발동 기준을 원·달러 환율 1480원으로 보고 있지만 그보다 밑단인 1473원 선에서 발동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시장이 보는 수치는 정확하지 않다”며 “내년 투자은행(IB)업계의 원·달러 환율 전망을 보면 한국 국채의 WGBI 편입으로 하반기 외국인 자금이 약 800억달러 유입될 가능성이 커 환율 전망이 현재처럼 높게 유지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실제로 달러를 매도했고, 지금도 헤지를 일부 수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2015년 상시적 환헤지를 전면 중단했지만 2022년 원·달러 환율이 정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면 해외 투자 자산의 5~10%까지 헤지할 수 있는 전략적 환헤지 제도를 도입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환율이 급등한 2022년과 12·3 비상계엄 여파로 환율이 요동친 올해 초에도 전략적 환헤지가 발동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환헤지를 언제, 어느 수준에서 발동하는 게 최적인지 항상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해외 투자 뉴프레임워크 일환으로 2015년 중단한 상시적 환헤지를 일부 재개할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겼다. 이 관계자는 “미래에는 환율이 반대가 돼 원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손해인 구조를 만들지 않기 위해 관계 부처가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화채 발행, 선조달 확대도 검토정부는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시 현지에서 해외채를 발행해 달러를 조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해외 투자를 위해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달러로 바꾸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레버리지를 활용한 수익률 제고도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불가능하지만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최대 1000억캐나다달러까지 외화채를 발행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채 발행을 위해선 국민연금법과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는 의원 입법 발의 형태로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외채 발행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준비 중”이라며 “장단점은 무엇일지, 발행 형식과 시점을 어떻게 할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의 외화 선조달 한도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조달이란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할 때 필요한 외화를 분산 매수해 외환시장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을 뜻한다. 이날 기준 국민연금의 선조달 한도는 분기별 60억달러, 월별 30억달러, 일별 1억1500만달러다. 정부 관계자는 “단기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조달 규모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외화 선조달 확대는 복지부의 ‘숙원’이기도 하다. 2022년 레고사태 때부터 관련 부처에 한도 확대를 요청했지만 당시에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연못 속 ‘고래’가 됐으면 고래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