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담대 5.5억 받았다가 '날벼락'…잔금일 은행 문자에 당혹

입력 2025-12-09 17:41
수정 2025-12-10 01:55
지난 9월 서울 염리동의 20평대 아파트를 구매한 30대 직장인 A씨는 잔금일인 이달 초 은행에서 보낸 문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10월 중순 은행과 고정금리로 5억5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빌리는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약정금리를 연 4.06%로 안내받았는데, 정작 문자에 기재된 확정 금리는 연 4.52%였기 때문이다. A씨는 “매달 상환해야 하는 원리금이 265만원에서 280만원으로 늘었다”며 “갑자기 불어난 이자에 지출 계획을 모두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잔금일에야 확정되는 주담대 금리A씨처럼 주담대 최종 금리가 은행과 계약할 때 약정한 것보다 0.5%포인트 가까이 높은 수준으로 정해지는 사례가 최근 많아지고 있다. 주담대는 일반적으로 계약 체결 이후 실행일(잔금일)까지 1~2개월 정도 시차가 발생하는데, 주담대 최종 금리를 잔금일에 확정하는 계약 관행이 만연해 발생한 부작용이다. 최근 대출 원가에 해당하는 은행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은행과 주담대 계약을 맺은 차주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원리금 부담이 계약 체결 이후에 갑자기 불어나는 것은 주담대 금리의 복잡한 결정 구조 때문이다. 주담대 금리는 대출 원가에 해당하는 지표금리에 은행의 이자마진에 해당하는 가산금리(우대금리 포함)를 더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이 중 가산금리는 은행과 대출을 계약한 약정일에 결정되지만 지표금리는 주담대 실행일(잔금일)에야 확정된다.

문제는 주택 구입 목적의 주담대는 대부분 차주와 은행이 계약을 맺고 1~2개월 뒤에야 잔금일이 도래한다는 점이다. 이에 주담대 계약 이후 지표금리가 급등하면 잔금일에 결정되는 최종 금리도 치솟을 수밖에 없다. 최근 2~3개월 내 국내에서 주담대를 받은 대부분 차주는 이런 금리 결정 구조 때문에 이자 부담이 급증하는 피해를 봤다. 728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한국은행의 매파적 기조에 국채 금리가 오르며 지표금리인 은행채 금리도 급등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년 만기 은행채(무보증·AAA) 금리는 지난 10월 10일 연 2.994%에서 12월 8일 연 3.499%로 0.505%포인트 상승했다. ◇은행권 “시장금리 급변에 대응”은행권이 이처럼 지표금리와 가산금리를 다른 날짜에 결정하는 주담대 구조를 고수하는 것은 시장금리 급변에 따른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담대는 보통 실행일 이후 5년간 금리가 고정되는데, 금리가 고정되는 시기를 늦춰야 1~2개월 시차 사이에 지표금리 급등에 따른 조달 비용 상승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한 시중은행 자금 운용 담당자는 “은행채 등의 금리는 매일 바뀌기 때문에 실행 시점의 실제 조달 여건을 적용하는 것이 국제적 관행이며, 리스크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소비자가 은행이 회피한 금리 급변 리스크를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과 같이 시장금리가 급등하는 시기엔 가계의 부담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잔금일에 확정되는 주담대 최종 금리가 계약 당시의 약정금리보다 많이 높아져도 차주가 계약을 철회하기 어렵다. 주담대 계약을 철회하면 잔금 지급을 앞두고 부동산 매매 계약을 함께 해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10월 주담대로 부동산 잔금을 치른 30대 직장인 B씨는 “약정금리보다 주담대 확정금리가 0.2%포인트 올랐지만 주택 구입을 잔금일에 취소하면 계약금과 중도금 모두 날릴 가능성이 높은데 누가 은행에 따질 수 있겠느냐”며 “은행이 변경한 금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주담대 지표금리를 계약일이 아니라 실행일에 결정하는 현재의 주담대 금리 결정 구조가 시장금리가 하락하는 시기엔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는 시각도 있다. 시장금리 하락기엔 지표금리가 하락한 만큼 최종 금리가 계약 시점의 약정금리보다 낮아지기 때문이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