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치 창업자 "엔젤투자는 사람이 중요, 이민자 창업자에게만 투자하죠"

입력 2025-12-08 16:00
수정 2025-12-08 16:01
“엔젤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민자 창업자에게만 투자하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지난달 20일 미국 보스턴 자택에서 만난 세미온 두카치 원웨이벤처스 창업자(사진)는 이런 철학 아래 지금까지 38개국 출신 창업자들에게 투자해왔다고 말했다. 2017년 출범한 원웨이벤처스는 1호 펀드(2800만달러 규모), 2호 펀드(5700만달러 규모)에 이어 현재 3호 펀드를 운용 중이다. 회사의 이름대로 ‘원웨이(편도)’ 티켓을 끊고 고국을 떠나온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탈(VC)이다.

두카치 창업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출신이다. 그는 “초기 단계 투자는 극소수의 큰 성공이 펀드 전체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라며 “기술보다 사람을 봐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편도 티켓을 끊고 고국을 떠날 정도의 결단을 한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실제 통계로 증명됐다. 미국 이민정책연구재단(NFAP)에 따르면 미국 내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582곳을 분석한 결과 319곳(55%)이 이민자 창업자가 세운 기업이었다. 미국 유니콘 기업의 약 80%는 이민자가 창업했거나 최고경영자(CE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요직에 이민자가 있었다. 두카치 창업자는 “시리즈A 단계에서 이민자 창업기업 비율은 25% 수준이지만 유니콘에서는 절반이 넘는다는 점에서 이들이 성공 확률이 더 높다는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반드시 미국 내 기업에만 투자하는 것도 그의 원칙이다. 대부분 투자 기업이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두카치 창업자는 “초기 단계일수록 창업자와 투자자가 물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미국은 자본과 인재, 규제 인프라가 모두 한곳에 모여있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 차이를 최소화해 밀착 지원을 해 시드 기업이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그의 이런 투자 철학에는 독특한 배경이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생들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블랙잭으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21>. 두카치 창업자는 이 영화의 실존인물이다. 그는 “1992년부터 블랙잭으로 약 500만달러를 벌었다”며 “확률과 투자의 개념을 몸으로 배운 첫 번째 비즈니스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다수의 정보기술(IT) 기업을 창업 및 매각한 뒤 엔젤투자자로 전향했다. 지난 20여 년간 연평균 3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최근 그가 관심이 커진 분야는 한국계 창업자들이다. 올해 초 한국 출신 파트너를 영입해 한국계 창업자들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했다. 최근 예일대 박사 출신 팀이 차린 트랜지스터 개발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인공지능(AI) 칩 전력 사용량을 100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다. 두카치 창업자는 “한국인들은 딥테크 역량이 뛰어나지만 재벌 중심의 구조로 창업 환경이 좋지 않아 뛰어난 인재들이 미국에서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두카치 창업자가 집중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버티컬AI’다. 그는 “모든 산업이 AI에 의해 재편될 것”이라며 “유행보다는 오래된 산업에 AI를 접목하는 기업이 더 강한 파괴력을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 사례가 이스라엘 스타트업 그린아이테크놀로지다. 딥러닝 기반 영상 인식으로 잡초별로 약제를 다르게 뿌려 농약 사용량을 10분의 1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우주 운송기업 모멘터스에도 투자했다. 스페이스X 덕분에 발사 비용이 크게 낮아지면서 우주 제조 및 운송 비즈니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보스턴=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