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핵추진 잠수함(핵잠)을 건조하려면 핵잠의 동력인 소형모듈원전(SMR) 핵심 기술 국산화와 함께 미국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전 부처가 '외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또 농축 우라늄과 SMR, 선체 등 ‘핵잠 3축’ 설계를 내년 말까지 하지 못하면 사업이 표류하거나 좌초할 위험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과 함께 8일 국회도서관에서 ‘핵추진 잠수함 도입 정책 추진 방향’ 대토론회를 열고 각계 의견을 들었다. 이날 행사엔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등 핵잠 제조 기술과 직결된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용욱 한화시스템 부사장은 “한국이 건조한 핵잠의 수출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해군 소요만으로 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핵잠 운용 경험과 전술이 없기 때문에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와 연계한 글로벌 공급망에 들어가 핵잠 개발→건조→유지·보수·정비(MRO)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초대 잠수함사령관을 지낸 윤정상 LIG넥스원 전문위원 역시 “핵잠 건설은 국내 산업계의 조선 역량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장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국 핵공급그룹(NSG)·에너지부(DOE) 등과의 핵물질 사용 협상부터 농축 우라늄 확보, SMR 교체 주기와 방식, 사용후 핵연료 처리 등 외교당국이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다는 것이다. 우라늄 농축도는 잠수함 내부 동력계통의 성능뿐 아니라 안전·냉각계통 설계와 하나로 맞물려 있다. 미국산 고농축 우라늄을 도입하려면 미국 대통령 승인 이후 국무부, DOE 등 미 행정부와 특별협정 교섭을 맺어야 하고, 최종적으로 미국 의회 표결을 통과해야 한다. 미 의회 내 '한·미 핵잠 협력그룹'을 결성해 우군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 전문위원은 “미국은 1950년대 핵잠을 먼저 만들고 이후 산업용 원전을 지었지만 우리는 정반대”라며 “안전, 환경 규제가 잔뜩 있는 상황에서 각종 행정기관, 환경단체가 개입하면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좌초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최태복 HD현대중공업 상무는 “SMR 개발과 도입, 건조와 운영까지 전주기 안전을 확보하는 기술 내재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군장교 출신으로 방위사업청 등을 거친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는 내년 말까지 ‘한국형 핵잠’의 기본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고 했다. 문 교수는 “핵잠은 조선과 원전, 국제조약과 군사작전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역대 최대 국가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며 “핵연료와 원자로, 선체라는 3중 기본 설계를 내년 말까지 하지 못하면 (정부가 주장하는) 2030년대 중반 사업 완료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