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군 칠구재를 지나는 지방도 817호선의 일부 구간(480m)에는 ‘낮은 가로등’이 설치돼 있다. 보통 가로등은 10m 이상 높은 기둥에 조명을 달아 아래 방향으로 빛을 공급하는 형태를 띤다. 반면 1m 남짓 높이인 낮은 가로등은 빛을 수평으로 쏴준다. 근거리에서 빛을 밝히는 만큼 에너지 효율을 높여 기존 가로등보다 전력 사용량을 30%가량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낮은 가로등 시스템 개발·생산 업체인 우노솔루션즈의 정경숙 대표(사진)는 지난 5일 기자와 만나 “낮은 가로등은 주행 환경을 더욱 안전하게 조성하면서 에너지 낭비와 빛 공해를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인프라”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16~2018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공동으로 국토교통부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해 낮은 조명 전용 렌즈 설계 기술을 개발했다. 2022년 상용화를 시작해 현재까지 국도 4호선 경북 경주 소티고개 부근, 광주대구고속도로 고령 부근 등 40여 개 도로에서 낮은 가로등을 선보였다.
낮은 가로등이 전력량을 약 30% 감축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빛의 세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광원이 가까우면 에너지를 덜 쓰더라도 동일한 밝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 대표는 또 “높은 곳에서 조명을 쏘면 도로 바깥 등으로 퍼지는 일이 많은데, 낮은 가로등은 빛의 90%를 도로에만 집중해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로 인근 주민이 밤에 잠을 잘 못 자거나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는 등의 빛 공해 문제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빛이 수평 방향으로 들어오면 운전자 눈부심 등 때문에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노솔루션즈는 빛이 완전 수평 방향으로 뻗는 게 아니라 비스듬히 아래로 꺾이도록 하는 렌즈를 개발해 이런 우려를 불식했다. 낮은 가로등 시스템이 오히려 주행 안전을 높일 것이란 평가도 적지 않다. 정 대표는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야간 운전을 할 때 가로등이 도로 왼편에 있는지, 오른편에 있는지 구분이 잘 안 될 때가 있다”며 “길 안쪽으로만 빛을 제공하는 낮은 조명 시스템에선 도로 모양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비가 오거나 안개가 꼈을 때 차선이 더 잘 보이는 효과도 있다”며 “현재 가로등이 아예 없는 지방 도로가 약 8만㎞ 있는데 전력 사용 절감과 안전성 강화 등을 앞세워 이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낮은 가로등은 왕복 4차선 이내 도로에만 설치되고 있다. 8차선 이상 넓은 도로에 적용하기엔 아직 기술적 한계가 있어서다. 지난해 7억원에 불과한 매출을 냈지만 우노솔루션즈는 가로등을 넘어 공원 산책로와 둘레길, 자전거도로, 주택가 등으로도 ‘낮은 조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