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잦은 비로 출하가 지연되면서 가격도 좀 오른 것으로….”
지난 2일 아침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열린 ‘2025년 11월 소비자물가동향’ 브리핑.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달 사과 물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올 11월 사과의 물가지수는 160.73으로, 작년 같은 달(132.84)보다 21% 올랐다. 현재 발표되는 물가지수는 2020년 기준으로 삼는다. 쉽게 말해서, 2020년 11월과 비교하면 지난달 사과 물가가 무려 60% 높다는 의미도 된다. 국가데이터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하기 위해 상품부터 서비스까지 총 458개 품목의 가격을 조사하고, 이 중에 약 10%인 40여개를 ‘주요 등락 품목’(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분류한다. 사과는 여기에도 이름을 올렸다.
일단 올해 사과가 작년보다 귀한 건 사실이다. 농업 분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4~12월에 매달 과일 품목별로 수급 상황과 가격 전망을 발표하는데, 지난 2일 발표한 12월호에서 “11월 사과 반입량이 수확 지연으로 작년보다 11.9% 줄었다”고 밝혔다. 일단 올해 사과 농사가 여의찮았다. 총생산량이 45만t으로 작년보다 3% 줄었다. 재배면적은 지난해와 비슷했는데, 기상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 면적당 수확량이 2.8% 줄었다.
10월 잦은 비로 수확 늦어져…11월 반입량 14% ↓설상가상 수확도 늦어졌다. 거의 매일같이 비가 오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전국 강수량은 173.3㎜로, 평년 수준인 63㎜보다 거의 세배 많이 왔다. 사과 주산지인 경북의 경우 강수량이 작년 10월 92.4㎜에서 올 10월 194.8㎜로 두배 넘게 뛰었다. 10월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후지 사과를 수확하는 시기인데, 궂은 날씨가 이어지다 보니 과일이 빨갛게 익지도 않고 수확 작업도 더뎌졌다는 설명이다.
수확이 늦어지니 시장에 풀리는 물량도 줄었다. KREI OASIS 사이트를 보면 지난달 서울 가락시장에 반입된 사과 물량은 2114t으로 집계됐다. 작년 11월에 2461t이 반입됐던 것과 비교하면 약 14% 줄었다. KREI는 “소비자들은 사이즈가 큰 사과(대과)를 선호하는데 이 비중도 다소 줄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말 사과가 작년보다 20%, 5년 전보다 60% 넘게 올랐느냐는 점이다. 사과 가격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물가 지수에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지적들이 많다. 논리적으로는 가격을 종합하면 물가, 물가를 나누면 가격이 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둘이 따로 논다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는 ‘물가지수’를 발표하지만 ‘가격’을 공표하진 않는다. 소비자들의 눈에 보이는 가격을 볼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사이트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다. aT에 따르면 올 11월 사과(후지·상품) 10개당 소매가격은 2만6549원으로, 작년 같은 달(2만4730원)보다 7.4% 올랐다. 물가는 21% 올랐다는데, 가격 상승률은 3분의 1 수준이다.
5년 전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2020년 11월 사과 소비자가격은 10개당 2만7743원으로 기록됐다. 지난달(2만6549원)엔 이보다 오히려 4%가량 떨어졌다. 물가 지수는 60% 넘게 올랐다는 점을 생각하면 차이가 작지 않다.
대형마트선 판매가격 25% 올라
혹시 조사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한 대형마트에 판매가격 자료를 요청해봤더니 뜻밖의 답변이 왔다. 이 업체는 후지 사과를 작년 11월에 1봉(약 1.3㎏)당 1만1900원(초·중순), 9900원(하순)에 팔았다. 지난달엔 1만5980원(초·중순)과 1만227원(하순)에 각각 판매했다. 두 해 모두 11월 하순에 큰 폭의 할인행사를 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어찌 됐건 단순 평균해보면 가격은 25% 올랐다. 국가데이터처의 물가지수(21%)보다는 높고, aT의 가격조사(7.4%)보다는 더 높다.
물가와 가격에 괴리가 큰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가격 조사 요령은 aT와 국가데이터처 모두 다수의 소비자가 할인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경우엔 할인가를 적용하고, 제한된 소비자만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은 제외하는 식으로 같다. 하지만 품목별 가격 조사처나 조사 대상의 상품 규격 등은 비공개 사항이다. 이런 구체적인 조사 기준까지 알려지면 의도적으로 제품 가격에 영향을 끼쳐 통계가 왜곡될 수 있어서다.
일각에선 물가지수를 산출하기 위해 가격을 조사하는 사과의 기준이 까다로울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가령 일반 소비자들은 명절이 아닌 한 중대형 크기의 사과를 주로 구매하는데, 기준 대상은 대과(大果·크기가 큰 과일)일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처럼 10월 잦은 강우로 수확기를 앞두고 생육이 부진했을 경우, 전반적인 사과 가격은 소폭 상승하지만, 대과 기준으로는 크게 올랐을 수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물가를 조사하는 시점에 가격이 일시적으로 크게 변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aT KAMIS는 전국 전통시장(15개 지역 17개소)과 대형 유통업체(22개 지역 36개소)에서 매일 가격을 조사한다. 이 일일 가격표를 바탕으로 월간 가격을 산출한다. 반면 국가데이터처는 농·축·수산물의 경우 열흘에 한 번, 한 달에 총 세 번 가격을 조사한다. 이 조사 당일에 순간적으로 가격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농산물은 날마다 날씨와 상황 따라 가격이 그날그날 바뀌기 때문에 조사 빈도나 시점이 물가지수 산출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여담이지만, 물가와 가격이 따로 노는 품목은 사과뿐만이 아니다. 귤의 경우 지난달 물가지수가 26.5% 상승했지만, aT 기준으로는 감귤(M과) 10개당 3813원에서 3774원으로 오히려 가격이 내려갔다. 배는 물가지수가 4.6% 떨어졌지만, aT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만3694원(신고·10개)에서 올해 11월엔 2만5864원으로 무려 23% 하락했다.
물가지수 상승률보다 실제 가격이 더 크게 오른 품목도 적지 않다. 망고는 물가 기준 8.8% 올랐지만, 가격은 14.5% 올랐다. 무의 경우 물가지수 상으로는 28.1% 하락했는데, 가격은 22% 떨어져 하락 폭에 차이가 있었다. 물가지수는 떨어졌는데 가격은 오른 품목도 있다. 열무의 경우 물가지수는 6.9% 떨어졌지만, 소매가격은 오히려 12.8% 상승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