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발표한 군비통제 백서에서 그동안 공식적으로 명시해왔던 '한반도 비핵화 지지' 문구를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6일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달 27일 '신시대 중국의 군비 통제, 군축 및 비확산' 백서를 공개했다. 이는 2005년 발표한 '중국의 군비 통제 및 군축' 백서를 업데이트한 것인데, 2005년 백서에 담겼던 '한반도에 비핵지대를 설립한다는 주장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이번에는 통째로 빠졌다.
백서는 대신 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정한 입장과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고 항상 한반도의 평화·안정·번영에 힘써왔다"며 원론적 표현만 담았다. 이어 "관련 당사국이 위협과 압박을 중단하고 대화와 협상을 재개해 정치적 해결을 촉진하길 촉구한다"고만 밝혔다.
과거 중국은 공식 문서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꾸준히 언급해왔다. 2017년 발표한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안보 협력 정책' 백서에서도 북한의 핵실험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고, "중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 추진과 한반도 및 동북아의 장기적 안정 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최근 공식 발언과 문서에서 비핵화 표현이 사라지는 흐름이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한 마지막 사례는 작년 3월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쌍궤병진과 단계적·동시적 원칙"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이후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문서에서도 2019년 회의와 달리 '한반도 비핵화' 관련 합의가 빠졌다.
중국은 당시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비핵화 표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한 결과문에서도 비핵화 내용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2018~2019년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매번 비핵화 문구가 포함됐던 것과 확연히 대조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이 주장해온 '핵보유국' 지위를 중국이 사실상 묵인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맞물려 있다고 해석한다. 북한 문제에서 미국과 협력하며 비핵화를 압박하기보다는, 북한을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는 지정학적 자산으로 유지하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자오퉁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더 이상 한반도 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핵무장을 한 북한을 묵인하는 것"이라며 "지난 1년 반 동안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언급에서 분명하게 멀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 핵문제를 의제에서 내려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태안보석좌도 "중국의 태도 변화는 미국·한국·일본의 확장억제 강화에 대한 '미묘한 항의'"라며 "북핵 억제를 위한 국제 압력을 우회하는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상황에서 중국 입장에서도 굳이 '한반도 비핵화 지지'를 유지할 이유가 줄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의 외교 문서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사라지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북핵을 둘러싼 동북아 전략 환경이 중국의 선택에 따라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