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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세계(메타버스) 부동산’ 가치가 바닥을 모르고 하락하고 있다. 한때 샌드박스와 디센트럴랜드 등 플랫폼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던 자산 가치가 10분의 1 미만으로 떨어졌다. 메타버스 개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던 메타도 발을 빼는 모양새다. ◇가상 부동산 가치 95% 폭락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의 가상 부동산 시장은 고점을 찍은 2021~2022년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코로나19 당시 각국의 봉쇄 조치로 외부 활동이 크게 제한되자 현실 세계 대안으로 부상했지만, 이후 투자자들의 관심이 기대에 못 미친 탓이다.
주요 메타버스 플랫폼 샌드박스의 가상 부동산은 최저 거래가격이 2021년 2.86이더리움에서 지난해 0.13이더리움까지 95% 떨어졌다. 올해 들어선 거래가 뜸해지자 앞서 가격 추이를 분석하던 시장조사기업들조차 관련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 한때 아디다스, 바이낸스, 구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메타버스 매장을 내던 것과는 딴판이다.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 디센트럴랜드도 마찬가지다. 올초 카네기멜런대 연구에 따르면 이 플랫폼의 메타버스 부동산 가격은 단위당 최고 1만5000달러(약 2200만원)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1000달러(약 150만원) 이하로 급락했다. 하락폭이 93%에 달한다.
카네기멜런대 연구팀은 “이 플랫폼의 가상 부동산 시장에 초기 진입한 투자자는 필지당 평균 1만5000달러씩 수익을 냈지만, 2022년 이후 진입한 개인투자자는 대부분 큰 손실을 떠안은 상태”라며 “만일 부동산 ‘손절’에 성공했더라도 필지당 평균 1000달러씩 손해를 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메타버스 이름을 달고 거래된 가상자산도 마찬가지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플랫폼의 네이티브 토큰 ‘ETP’는 2017년 10월 토큰당 약 5778원에 거래됐지만 지난 4월 기준 7.63원까지 하락했다. 가치가 99.87% 깎인 셈이다. 2023년 중반부터는 주요 암호화폐거래소가 상장폐지해 사실상 이름만 남아 있다. ◇메타, 104조원 적자에 “구조조정 논의”‘글로벌 메타버스 1인자’를 자임했던 빅테크 메타도 점점 사업을 줄이고 있다. 이 기업은 2021년 10월 사명을 대표 서비스명인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꾸고 같은 해 12월 가상현실(VR)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월드를 내놨다. 2022년엔 메타버스 사업부인 리얼리티랩스 직원이 1만 명을 넘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메타버스가 차세대 먹거리라는 확신을 수차례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메타의 호라이즌월드 월간 이용자는 2022년 말 20만 명 수준으로 당초 목표치 50만 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메타는 이후 관련 지표를 비공개 처리했다. 리얼리티랩스 사업부의 연간 영업손실액은 매년 늘어났다. 2021년 이후 올 3분기까지 누적 적자폭은 709억달러(약 104조202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리얼리티랩스가 낸 매출은 21억달러(약 3조850억원)에 불과하다.
한동안 ‘밑빠진 독’에 물을 붓던 메타도 결국 구조조정에 나서는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저커버그 CEO는 지난달 내년 사업 기획회의를 열고 리얼리티랩스와 호라이즌월드 관련 예산을 최대 30%가량 줄이는 안을 논의했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인력 감축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게 월가의 전망이다. 이날 미국 나스닥시장에서 메타 주가는 구조조정 가능성 소식에 3.43% 오른 661.53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투자자들이 메타가 ‘돈 붓기 실험’에서 철수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정보기술 전문매체 더버지는 “메타가 가상세계의 환상 대신 근시일 내에 수익을 낼 수 있는 인공지능(AI)·웨어러블 기술에 베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