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길에 지나가는 대형 빌딩의 1층을 떠올려보면, 웅장한 로비보다 스타벅스 등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이 먼저 눈길을 끌 때가 많습니다. 너무 익숙한 장면이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지만, 이 풍경 뒤에는 한국 부동산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거대한 변화가 숨어 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1997년 외환위기였습니다.
당시 한국 경제를 뒤흔든 충격은 부동산 시장에도 새로운 질서를 가져왔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론스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자들이 국내 대형 오피스 빌딩을 적극적으로 인수했고, 이들은 자산 가치를 체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글로벌 자산관리 회사 CB리처드엘리스(CBRE)그룹, 존스랑라살(JLL),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 등을 한국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국내 부동산 시장에는 단순 유지·보수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부동산 자산관리(PM)’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점이 바로 국내 부동산이 ‘유지·보수’ 중심의 시대에서 ‘자산 운용’의 시대로 이동한 결정적 분기점이었습니다. 건물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쳤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부동산을 금융 상품처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가치 상승을 추구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혁신의 출발점은 부동산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건물을 사두면 그대로 존재하는 ‘고정자산’으로 여겼고, 관리는 건물이 낡거나 고장 나지 않도록 하는 소극적 시설관리(FM)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자산관리 개념이 도입되면서 부동산은 끊임없이 수익률을 고민하고 극대화해야 하는 ‘투자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성공의 기준 역시 건물의 물리적 상태가 아니라 순운영소득(NOI)과 같은 재무 성과로 이동했습니다. 부동산을 하나의 ‘살아있는 기업’처럼 대하며, 투자 수익률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활동이 핵심이 된 것입니다.
과거의 시설관리가 시계의 태엽을 감아 멈추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었다면, 현대의 자산관리는 스마트 워치처럼 기능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해 가치를 끌어올리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부동산이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 되자, 관리의 중심도 자연스럽게 건물의 물리적 상태에서 ‘수익 창출’로 완전히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이 수익의 원천은 다름 아닌 임차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던 임차인 유치 및 관리가 이제 현금흐름의 출발점이자 수익 극대화의 핵심 활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신용도 높은 우량 임차인을 확보하고, 한 번 들어온 임차인이 오래 머무르도록 만드는 것이 자산관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 것입니다.
이 변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대형 빌딩 1층의 스타벅스입니다. 이는 과거에는 수익을 충분히 내지 못하던 공간을 안정적이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우량 임차인으로 채운 전략적 결정입니다. 이 결정 하나로 건물의 순운영소득은 즉각적으로 증가하고, 이는 곧 빌딩 전체 자산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대형 빌딩의 모습은 1997년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파도가 남긴 결과물입니다.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해외 투자자들은 건물을 단순한 ‘고정자산’이 아닌 ‘투자자산’으로 바라보며 기업처럼 경영하는 시각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건물의 물리적 관리에서 벗어나 ‘임차인’을 중심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습니다.
앞으로 부동산 자산관리는 첨단 기술과 데이터 분석을 만나 더욱 정교하고 고도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이처럼 거대한 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 이 변화의 흐름을 더욱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할 시점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용남 글로벌PMC(주)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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