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겁주고 야단쳤는데, 산재 더 늘어"

입력 2025-12-04 17:53
수정 2025-12-05 01:36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산업 현장 사망 사고와 관련해 “(기업을) 압박도 해보고, 겁도 줘보고, 수사도 해보고, 야단도 쳐보고 하는데 대형 사업장은 줄었지만 소형 사업장은 오히려 더 늘고 있다”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취임 후 군기 잡기식으로 산업계를 몰아쳤지만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답답함을 내비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제62회 무역의 날을 앞두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산업 역군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모든 산재 사망 사고는 다 보고하라고 해서 보고 있는데 매일 ‘죽었다’는 소리가 올라온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떨어져서 죽었다, 끼여서 죽었다, 졸다가 어떻게 해서 죽었다(고 한다)”며 “여전히 일하는 현장은 참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된다”며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국내 대형건설사 현장에서 연이어 사망 사고가 나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냐”며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면허 취소를 검토하라” “주가를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 국무회의에 배석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산재를 줄이는 데 직을 걸겠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상당 기간이 지나도 산재가 안 줄어들면 진짜로 직을 걸라”고 말했다.

한 산재 예방 전문가는 “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사후 처벌 강화가 아니라 인센티브 부여를 통한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기업을 악마화하는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李 '산재와의 전쟁'에도…50인 미만 사업장 산재사망 10% 늘어
李 "일하다 죽는 사람 타국 3배"…전문가 "기업 제재만으론 한계"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취임 이후 “후진적인 산재공화국을 뜯어고쳐야 한다”며 ‘산재와의 전쟁’을 벌여왔다. 국무회의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공개석상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특정 회사의 이름을 거론하며 “미필적 고의 살인”이라고도 했다. 정부도 안전 조치 미비에 대한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 정비를 해왔다. 그럼에도 산재 사망자가 줄어들지 않자 급기야 이 대통령은 4일 산업 역군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3분기 누적 산재 사망자는 45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늘었다. 특히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의 사망자가 같은 기간 249명에서 275명으로 10.4% 증가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94명에서 182명으로 6.2%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다 죽는 사람이 비율로 따지면 두세 배가 더 많다”며 “대한민국이 다른 건 선진국이라는데 산재, 중대재해, 사망사고 이런 데서는 후진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꼭 해결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은 노력만큼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 늘 안타까움을 표명했다”며 “산재를 줄이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대통령실이 대책 강구에 애를 쓰고 있다”고 했다.

산업계와 산재 예방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군기 잡기식’ 산재와의 전쟁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망 사고의 원인이 기업에 있다고 보는 기본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나쁜 결과가 발생하면 인과관계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사업주에게서 원인을 찾는 건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며 “사망 사고의 원인을 세세하게 따져서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기업 제재에만 치우쳐 있다”고 했다.

이날 무역의 날을 하루 앞두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산업 역군 초청 오찬 간담회에는 최초 국산차 ‘포니’ 탄생 주역인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과 포스코 창립 멤버 34명 중 한 명인 이영직 전 건화엔지니어링 부회장 등 90여 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1970~1980년대 경제·산업 고도성장에 기여한 산업계 원로 인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체감 물가가 높아지면서 민생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며 선제적 대응을 지시했다. 특히 담합 등 불공정거래로 인한 인위적 물가 상승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점검할 것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부당하게 물가를 담합해서 올린 게 없는지, 시장 독점력을 활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는 않았는지 철저하게 점검해달라”고 했다.

한재영/곽용희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