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현장에서 시공자의 일방적인 공사비 인상 요구와 고의적 착공 지연에 대해 법원이 조합 측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는 지난 10월 대구 중구 태평78상가아파트 재건축사업의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신탁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현대건설에 총 133억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법원은 “현대건설이 공사에 착수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도급계약에 따른 공사비 인상비율인 8.42%를 현저하게 상회해 총 공사대금 40%, 그 중 물가상승 명목으로는 32% 수준의 공사대금 증액을 요청하면서, 한국토지신탁이 도급계약을 해제한 2024년 10월까지 착공을 하지 않았다”며 “현대건설이 정당한 사유 없이 1개월 이상 공사 착공을 지연한 것으로 도급계약에 따른 계약 해제 사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시공사 측은 법원에 항소했다.
현대건설은 2020년 태평78상가의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신탁과 시공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2021년 공사기간을 1개월, 공사비를 115억원가량 늘리는 내용으로 변경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태평78상가는 2021년 5월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아 2023년 2월 주민 이주를 마쳤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2022년 공사비 인상을 요청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당초 실착공까지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기준으로 도급공사비를 협의해 조정키로 합의했지만 해당 금액으로는 물가 상승분을 맞추기 어렵다는 게 현대건설의 주장이었다.
한국토지신탁은 공사비 증액 요청을 거부하고 철거공사 착수와 철거공사 수행계획 제출, 계약보증금 납부 또는 계약보증서 제출 의무 등의 이행을 요구했지만 현대건설은 공사비 증액 없이는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고 맞섰다.
한국토지신탁은 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으며 지난해 11월 현대건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는 한국토지신탁의 주장을 받아들여 “현대건설이 ‘정당한 사유 없이 착공을 지연’했고 이는 계약상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소비자물가지수를 물가상승 지표로 삼은 계약 조항이 무효”라는 현대건설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현대건설이 도급계약 체결 과정에서 해당 조항을 수용하기로 하는 분명한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