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구광모의 남자들’ 전면 퇴장…‘2026 재계 리셋’의 의미

입력 2025-12-05 06:04
수정 2025-12-09 14:33
[비즈니스 포커스]




국내 주요 기업들이 2026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대대적인 리더십 재편에 나섰다. 부회장단과 전통적 2인자 체제가 빠르게 해체되고 30·40대 젊은 리더들과 오너 3·4세들이 전면에 나섰다.

미·중 무역 갈등, 글로벌 경기 둔화, 고금리, 환율 급변, 치열해지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 등 대외 불확실성이 겹친 가운데 기업들이 속도와 기민함, 책임경영 체제 확보에 무게를 둔 결과로 풀이된다.

부회장단 정리, 설 곳 잃은 2인자들
복잡한 보고체계→실행력 중심으로

올해 인사의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기존 2인자 체제’의 해체였다. 부회장·2인자라는 위치가 더는 리더십 상징이 아니라 구조 개편 대상이 됐다.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경영체제와 의사결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LG그룹은 부회장 숫자를 줄였다. 부회장의 상징 같았던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권봉석 (주)LG 부회장 한 명만 남았다. 부회장 후보로 거론되던 조주완 LG전자 대표도 용퇴했다.

SK그룹에선 4년 만에 부회장 승진자가 나왔지만 상징적 수준이다. 이형희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서기보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맞는 솔루션을 제시하는 조력자 역할을 할 전망이다.

롯데그룹은 더 과감했다. 2026년 정기인사에서 기존 4명의 부회장 전원이 일선에서 물러났고 그룹 전체에서 CEO급 20명이 교체됐다. HQ(본사 중심 사업총괄) 체제가 폐지되고 각 계열사 중심의 책임경영 체제가 새롭게 자리 잡았다. HD현대에서는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권오갑 명예회장이 용퇴했다.





삼성전자는 2025년 11월 기존 ‘삼성 사업지원TF’를 정식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전환하면서 그간 2인자 역할을 맡아온 정현호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후임으로 박학규 사장이 사업지원실장을 맡았다.

이 같은 변화는 세 가지 주요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의사결정 라인 단순화와 실행력 확보다. 다단계 보고-결재 체제를 벗어나 각 계열사 단위로 권한을 분산하면 시장 변화와 위기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 복잡한 내부 절차를 과감히 걷어낸 것이다.

둘째, 책임경영과 실적 중심 메시지 강화다. 과거 부회장직은 ‘총수 보좌’나 그룹 조율 역할이 많았지만 지금은 명목보다 실질 책임과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가 강화되고 있다. 단순 직함 유지보다 실무형·성과형 리더십을 우선한 인사 구조 전환의 의미가 분명하다.

셋째, 신사업·기술 중심의 사업 구조 전환을 위한 조치다. 반도체, AI, 친환경, 신소재 등 급변하는 산업 패러다임 속에서 전통 사업 중심의 경영진보다는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실무형 리더와 젊은 경영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확산했다.

이 같은 구조 재편은 단순한 인사 변화가 아니라 그룹의 의사결정 체계, 책임 구도,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을 바꾸려는 시도로 읽힌다.





유정록 커리어케어 그로쓰본부 전무는 이번 추세를 두고 “레거시 사업·제품군과 그에 익숙한 ‘관리 중심’ 임원 구조를 버리고 미래 기술과 신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 수 있는 ‘실무 중심 리더’를 전면에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부회장단 해체와 2인자 퇴진은 단지 세대교체를 넘어 ‘속도’, ‘책임’, ‘혁신’이라는 새 시대 경영 가치에 맞춘 구조 개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설명이다.

젊은 리더와 오너 3·4세의 전면 배치
속도·혁신 중심으로 재계 권력 지도 재편

부회장단과 전통적 2인자들이 물러난 자리는 젊은 세대와 오너 후계들이 채웠다. 그 폭과 속도가 올해 재계 인사의 또 다른 큰 변화였다.

HD현대는 3세 경영자인 정기선 회장을 그룹 내 최고 사령탑으로 승진시키며 오너 경영 체제를 복원했다. 정 회장은 조선·건설기계·에너지·신사업 등 그룹 전 사업 부문에서 친환경·디지털·AI 전환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 신성장 분야 육성을 중심으로 향후 5년 내 그룹 매출 100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신유열 부사장을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로 선임해 전략 신사업을 오너 3세에게 맡겼다. GS그룹도 허용수 GS에너지 사장과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을 부회장으로 올리며 오너 중심의 책임경영을 강화했다. LS그룹의 구동휘 LS MnM 대표 역시 사장으로 승진해 그룹의 차세대 리더로 자리 잡았다.





유통업계에서도 젊은 오너들의 고속 승진이 이어지고 있다. 삼양식품의 전병우 COO는 2년 만에 전무로, 농심의 신상열 전무는 1년 만에 부사장으로 올랐다. SPC그룹에서는 허진수 사장이 부회장, 허희수 부사장이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오너 3세들의 전면 등장에 대해서는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대기업 경영을 위한 경영학습을 충분히 받았는지에 대한 우려와 따가운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반면 기대도 크다. 빠르게 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란 해석이다. 대기업 전반에서 3·4세 경영진의 진입 속도가 빨라지며 의사결정 과정이 한층 역동적이고 유연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디지털, AI, 친환경, 신사업 부문에서 실질적 전문성과 실행력이 연공서열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유 전무는 “디지털, AI, 친환경, 신사업 속도가 과거와 비교조차 안 될 만큼 빨라졌다. 단순히 연공서열로 경영을 이어가는 것은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흐름은 주요 그룹에서도 나타난다. CJ그룹은 1990년대생 임원을 등용하며 젊은 조직문화를 강화했고 LG CNS에서는 1986년생 조헌혁 상무,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는 1988년생 안소연 상무가 각각 최연소 임원으로 발탁됐다.

SK그룹에서는 전체 신규 임원 85명 중 20%(17명)를 1980년대생으로, 60%(54명) 이상을 40대로 구성했다. 신규선임 임원의 평균 연령은 만 48.8세로, 지난해 만 49.4세보다 젊어졌다. 이중 최연소 임원은 1983년생 안홍범 SK텔레콤 Network AT/DT 담당이다.

재계 전반에 걸친 이 변화는 세대교체를 넘어 ‘속도와 혁신으로 승부하는 경영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기술·미래사업 중심 조직개편
슬림한 구조와 전문성 기반 리더십 전환

재계 전반에서 기술 인재와 미래사업 중심의 인사 흐름이 뚜렷해진 것도 이번 인사의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등 미래 기술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총 161명이라는 대규모 승진 규모는 5년 만에 확대된 것이다. 이는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과 경쟁 환경에 대비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LG그룹 역시 조직개편과 함께 생활가전 사업 중심이던 기존 체제에서 탈피해 솔루션 사업, 플랫폼 중심 사업으로 재편에 나섰다. 신임 CEO로는 가전 연구개발 경험이 풍부한 ‘기술통’ 류재철 대표를 앉히며 ‘기술 기반 리더십’이라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조직을 보다 슬림하게 하고 기술과 미래 사업에 집중한 것은 ‘속도’와 ‘효율성’,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적 선택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제조·제품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AI, 데이터, 신기술 중심 사업 구조로 재편하려는 시그널이다.





유 전무는 “과거처럼 경험과 연공에 기대던 인사 구조는 이제 작동하지 않는다. 미션 기반, 스킬과 성과 중심의 인사 시스템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슬림한 조직을 기반으로 리더가 직접 실행하고 보고 단계를 줄여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는 구조는 위기 대응 속도와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기업은 인사에서 부회장단을 정리하고, 젊은 세대와 오너 후계에 기회를 주고, 기술과 미래 사업을 중심으로 조직을 슬림화했다. 글로벌 위기와 산업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생존과 혁신을 동시에 꾀하려는 ‘리셋’을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가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빠른 세대교체와 구조 재편에는 리스크가 뒤따르며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유 전무는 “새로운 체제가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신사업 중심 포트폴리오 재설계, 애자일 조직,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핵심 인재 리텐션 강화, 재무 안정성 확보 등을 위한 준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