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2026 대전망]
2025년은 반전의 한 해였다. 지지부진하던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했고 산업은 활로를 찾았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했고 방산과 조선이 미국 무역전쟁의 수혜주로 떠오르면서 수출은 사상 최대를 찍었다. 올해 연간 수출은 ‘7000억 달러’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 남을 ‘경제 이정표’를 세웠지만 정점으로 가는 과정은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했다.
2025년 초 계엄의 터널을 빠져나오던 경제 전망은 암울했다. 한국 경제가 0%대 성장에 그칠 것이란 글로벌 기관의 전망이 쏟아졌고 코스피는 6월 대선 이전까지 3000 아래에 머물렀다. 산업은 경쟁력을 잃은 듯 보였고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압박이 심해지면서 제조업을 내세운 한국 수출 역시 암울한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발 관세정책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중국 고립은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됐다. ‘세계의 공장’을 대체할 수 있는 제조업 국가로 한국이 다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상승의 동력을 얻은 산업은 다시 뛰었다. 반도체, 조선, 전력, 자동차 등 기간산업 제조 역량을 갖춘 한국이 전 세계의 ‘인프라’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 증시와 원자재 시장 역시 상승세를 탔다. AI 거품은 ‘곧 꺼진다’는 우려 속에서도 몸집을 키웠고 나스닥 지수는 올해 21% 올랐다. 금, 은, 구리는 선물가격이 1980년 이후 처음으로 동시에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전방위적인 ‘상승의 폭발’이 시장을 지배했다.
2026년에도 자산 가격의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산업의 구조적 성장 속에서 내년 코스피 상장사의 연간 영업이익 합산액이 392조1147억원(에프앤가이드 11월 추정치)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사상 최대치로 올해 예상 연간 영업익(276조6607억원)보다도 100조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내년 증권사가 예상한 코스피 상단은 4500~7500이다. 증권사별 예상하는 코스피 변동성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미국 증시는 버블이 곧 꺼질 것이란 우려 속에서도 크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상승도 하락도 ‘폭발력이 약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란 예측이다. ‘불확실성’이 만성화되면서 투자자들은 충격을 준비하고 있고 예기치 못한 변수마저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된 ‘상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엔비디아의 부진한 주가흐름은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다. 글로벌 시장 ‘인프라’ 된 한국
상수가 된 변수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기초체력을 길렀다. 특히 AI 수요 폭발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2017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의 메모리 사이클이 증설(공급 확대)과 가격 하락의 반복이었다면 AI 시대의 B2B 수요 확장은 장기 호황을 이끌 구조적 동력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는 2026년 물량까지 이미 완판됐으며 D램과 낸드플래시 전반의 공급 부족 현상은 2027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승 동력 역시 주가에 미리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애널리스트와 시장은 물론 개인투자자들도 공급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주가가 그동안 AI 반도체 수요를 모두 빨아들였다면 올해 하반기부터는 삼성전자도 상승세를 이어받았다. 삼성전자 역시 HBM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한국은 AI 인프라의 핵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방위산업 역시 내년에도 성장동력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이 국방비를 늘리면서 한국 방산 기업들의 수출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은 이미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음악, 드라마, 영화, 게임 등 K컬처는 산업적 경험과 창작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 주류 무대에 확고히 섰다. 2025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열풍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K팝 장르가 최상위권을 차지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스트레이키즈, 블랙핑크 등 아이돌의 영향력도 상상을 뛰어넘었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노래 ‘APT’, 케이팝 데 몬헌터스의 ‘골든’, 한·미 합작 걸그룹 캣츠아이, 토니상 수상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등이 모두 내년 2월 열리는 그래미어워즈 수상 후보에 올랐다.
글로벌 시장에서 K컬처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와중에 국내에서는 ‘K팝 정점론’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K팝 앨범 판매량이 2023년 1억 장을 돌파하며 정점을 찍고 하락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K팝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4%에 불과하고 K팝을 대체할 장르는 찾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정점이 오더라도 폭발적 성장 없이도 그 상태를 상당 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금리인하·재정확대 동시에
2026년 글로벌 경제의 방향타는 금리인하와 재정확대 정책이 동시에 일어나는 ‘폴리시믹스’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는 돈을 풀고(재정확대), 중앙은행은 돈의 가치를 낮추는(금리인하) 정책이 동시에 진행되면 시장의 유동성이 대폭 증가하고,자산 가격은 상승한다.
증권가에서는 2026년 미국이 금리인하 사이클과 함께 대규모 재정 부양책을 쏟아내며 상승 모멘텀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26년 미국 감세 규모는 4800억 달러로 추정되고 법인 실효세율은 현재 21%에서 최대 16%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만약 2026년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경기 하강보다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모두 경기를 부양하는 데 따른 부작용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중간선거 승리를 위한 경기부양 드라이브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마침 11월 미국의 민간기업 고용지표도 전월 대비 3만2000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면서 금리인하에 힘을 실어줬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두 가지 목표는 ‘물가안정’과 ‘고용확대’다.
재정확대와 금리인하는 코스피에도 훈풍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한국 역시 확대 재정과 금리인하 기조를 유지하며 내수회복을 이어가고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을 통해 국내 증시의 가치를 정상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2025년까지 3년 연속 강력한 강세장을 이어온 미국 증시가 4년 차에 접어들며 ‘쉬어갈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내년 글로벌 증시가 하락하면서 한국 산업의 성장성과 별개로 상승탄력이 둔화할 수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센터장은 “미국이 2023년부터 3년 연속 굴곡 없는 강력한 강세장을 이어온 만큼 4년 차에는 쉬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 증시는 PBR 1.2배로 여전히 가장 저렴한 시장 중 하나지만 글로벌 증시가 삐그덕 거린다면 내년에는 상승 탄력이 둔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