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류업체 아메리칸이글의 주가가 수개월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산하 대표 브랜드를 통해선 ‘구설수 마케팅’을 벌이고, 다른 브랜드로는 ‘정치적 올바름(PC)’ 마케팅 전략을 쓰는 방식으로 시장 관심과 실적을 각각 끌어올린 덕분이다. ‘논란 광고’ 이후 주가 93% 상승미국 뉴욕증시에서 아메리칸이글 주가는 지난 한 달간 26% 뛰었다. 미국 안팎에서 논란을 부른 청바지 광고를 공개한 7월 23일부터 이날까지의 상승률은 92.51%에 이른다.
이 회사는 2일(현지시간)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9.70% 오르며 22.85달러에 장을 마쳤다. 호실적에 더해 연간 실적 전망치까지 올려잡은 영향이다.
아메리칸이글의 3분기 매출은 13억6000만달러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했으며, 시장 전망치(13억2000만달러)도 웃돌았다. 순이익은 9134만달러로 전년 대비 14% 늘었고, 희석 주당순이익은 53센트로 시장 예상치(41센트)보다 높았다.
이날 이 기업은 연간 실적 전망도 상향했다. 연간 조정 영업이익 가이던스를 기존 2억5500만~2억6500만달러에서 3억300만~3억800만달러로 높였다. 제이 쇼텐스타인 최고경영자(CEO)는 “마케팅과 운영 전반에 걸쳐 변화를 준 결과가 나타났다”며 “연말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내년에도 호실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도 한마디…‘인종주의 광고’로 주목 끌어아메리칸이글의 이번 실적은 백인 우월주의 논란을 일으킨 청바지 광고의 여파가 처음 반영된 결과다.
지난 7월 말 아메리칸이글은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잘 알려진 배우 시드니 스위니를 모델로 기용해 “시드니 스위니에겐 훌륭한 진(jeans·청바지)이 있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이 광고는 나오자마자 논란을 샀다. 영어로 청바지를 뜻하는 단어와 유전자를 뜻하는 단어(genes)의 발음이 동음이의어란 점을 광고가 십분 활용해서다.
광고 영상에서 스위니는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머리색, 성격, 눈동자 색을 결정한다"며 "내 진은 파란색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 스위니가 해당 문구를 읊었다는 점을 짚으며 광고가 '좋은 유전자'를 가리는 우생학적 인종주의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논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가세하며 더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플랫폼 트루스소셜에 “정식 공화당원인 시드니 스위니가 최고의 광고를 내놨다"며 "잘한다 시드니!”라는 글을 올렸다. 이후 언론 인터뷰에선 “그 광고는 훌륭하다”고도 했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브랜드 화제성은 급격히 올랐다. 주가도 상승세를 탔다. 크레이그 브로머스 아메리칸이글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광고 공개 후 6주 만에 신규 고객이 70만 명 이상 늘었다”며 “청바지는 줄줄이 품절됐다”고 했다. 이어 “광고를 내릴 생각은 전혀 없고, 시드니 스위니와의 협업도 계속할 계획”이라고 단언했다.
광고가 화제에 오른 덕분에 아메리칸이글은 ‘고리타분한 구시대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시작했다. 뉴욕포스트는 이를 두고 “아메리칸이글이 과감하게 ‘갈라치기 마케팅’을 벌인 것”이라며 “그간 이 기업이 속옷 브랜드 에어리 등을 통해 시도했던 'PC적 패션' 마케팅은 한계에 부딪혔다”고 평가했다.실질 매출은 'PC 브랜드'가 주도실적을 보면 시장 관심은 아메리칸이글이 끌었지만, 실질적인 매출 성장세는 속옷 브랜드 에어리가 주도했다.
올 3분기 에어리의 기존 점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 급증했다. 이 기업 산하 전체 브랜드의 기존 점포 매출 성장률(연간 4%)을 견인했다. 반면 아메리칸이글 브랜드는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장 전망치(2.1%)의 절반 수준이다.
에어리는 청바지 광고와는 정반대로 인종·체형 다양성을 강조하는 광고가 특징이다. 슈퍼모델 대신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기용하는 식이다. 쇼텐스타인 CEO는 “에어리와 애슬레저 브랜드 오프라인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CNBC는 “아메리칸이글은 논란을 산 청바지 광고가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고 했지만, 그 효과가 아직 본격적인 매출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고시장 분석기업 이마케터의 스카이 캐너브스 연구원은 “두 브랜드가 완전히 다른 전략을 쓰고 있다”며 “에어리는 스타일과 기능을 중시하고 가성비를 추구하는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고, 아메리칸이글은 광고에 비용을 집중하며 공격적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