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텔은 ‘애니메이션 덕후들의 넷플릭스’로 꼽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다.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다루는 국내 유일 OTT로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은 현재 3700여개에 달한다. 7년에 걸쳐 약 1000개였던 종류를 네 배 가까이 늘리며 일본, 한국 콘텐츠공급사(CP)가 먼저 찾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2년부터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연세대 수학과 출신 박종원 대표(38)는 ‘1호 사원’으로 라프텔에 합류했다. 2015년 연세대 창업지원센터에서 라프텔을 세운 김범준, 신형진씨를 만나면서다.
LG CNS에서 빅데이터 관련 업무를 한 그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젊을 때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고 회상했다. 평소 원피스와 나루토, 블리치 등 인기 일본 만화를 좋아해 콘텐츠 회사를 일궈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덕후를 널리 이롭게 한다'는 회사 초심 지키려 잔류
창업의 삶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사실상 퇴직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상황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해야 했다. 박 대표는 “여건이 녹록치 않아도 만화광인 팀원들과 의기투합해 ‘덕후를 위한 회사’를 일구는 데 힘썼다”며 “2016년 정부의 팁스 사업 지원을 받으며 제대로 된 첫 월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팁스 사업을 기반으로 라프텔이 2017년 OTT 사업을 본격화하는 데 일조했다. 일정 비율에 맞춰 수익을 나누는 구조로 CP사를 계속 늘렸다. 넷플릭스에 앞서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스파이 패밀리’ 독점 계약을 딴 배경 중 하나다.
박 대표는 “애니메이션을 불법으로만 보는 유통 시장을 양지화하면서 점유율을 자체 추산 기준 40~50%대로 끌어올렸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가 몰리며 실제로 라프텔 모바일 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지난 7월 100만명을 넘겼다.
회사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오른 박 대표가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된 건 2022년이다. 2019년 리디북스에 이어 애니플러스에 인수되기 앞서 라프텔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면서다.
박 대표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대표를 잘 맡을 수 있을지 고민이 컸고, 아예 새롭게 창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면서도 “힘겹게 일궈 온 회사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아 고민 끝에 회사에 잔류해 대표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의 의지로 라프텔은 임직원의 자율성과 책임을 보장해 ‘덕후를 널리 이롭게 한다’는 초심을 유지하고 있다. 직급에 상관없이 닉네임과 평어로 편히 대화하며 업무를 하는 것이 한 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해 연구하는 모임 ‘덕후감’ 외에도 보드게임, 전시회, 방탈출, 밴드, 독서 등 통상 업계에 종사하는 임직원이 좋아하는 사내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박 대표는 “누구나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조직 문화가 우리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덕업일치'하는 회사 만들 것"
성과도 커지고 있다. 라프텔은 토종 OTT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회사다. 2010년대 10여명에 그친 직원 수는 올해 60명으로 뛰었다.
최근에는 라프텔 애니메이션 관련 굿즈 판매를 시작했다. 2019년부터 시작한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도 네이버 웹툰 ‘용한 소녀’, ‘마루는 강쥐’ 등의 인기 IP를 활용해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 사업은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6개국에 진출해 1년 만에 MAU 30만명을 확보했다. 박 대표는 “애니플러스 현지 법인의 콘텐츠 수급망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빠르게 조직 체계를 갖췄다”며 “애니메이션 불법 시청률이 높은 동남아 시장에서 라프텔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재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회사를 키우는 게 박 대표의 목표다. 그는 “라프텔을 단순히 돈을 잘 버는 OTT를 넘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덕후들의 필수템으로 키우고 싶다”며 “스스럼없이 ‘덕업일치’하며 즐겁게 일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