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25살 아들 칼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추락사했다. 시와 소설, 희곡을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을 쏟아내던 작가는 "아름다움은 내 언어를 떠났다. 내 언어는 상복을 입고 있다"고 느꼈다. 글쓰기가 버거워 한 문장을 채 맺지 못했던 그는 시와 일기, 아들이 남긴 글, 다른 작가가 애도를 다룬 문학 작품 일부 등 조각난 글들을 모아 <죽음이 너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면>을 펴냈다.
덴마크 작가 나야 마리 아이트는 2일 서울 남대문 인근에서 열린 이 책의 국내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아들이 죽은 지 약 9개월 만에 날 것의 슬픔과 충격, 비통함을 담아 쓴 책"이라며 "언어로 뭔가를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서 글을 쓰기 위해 콜라주(collage) 같은, 아예 새로운 형식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아이트 작가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1주년을 기념하는 '연세노벨위크' 행사에서 오는 4일 강연하기 위해 내한했다. 1963년 그린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죽음이 너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면>으로 2018년 스웨덴 아카데미 북유럽상을 받았다. 이 상은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수여해 '작은 노벨상'으로 불린다.
아들이 친구와 환각성 버섯을 나눠먹은 뒤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뒤 그녀는 "시간을 창조"했다. 그의 글은 아들이 갓난아기였을 때의 기억, 직접 목격하지 못한 아들의 죽음 당시 등 여러 시간대를 오간다. 아이트 작가는 "이 책의 형식은 순수한 절망에서 나왔다"며 "아들의 죽음 당시 시간이 파괴된 느낌이라 여러 시간대를 오가는 형식을 찾아야 했다"고 했다.
집필은 그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하는 과정이었다. 망가지고 조각난 문장들로 시작한 책은 점차 긴 문장을 회복한다. 아이트 작가는 "애도는 영원하고 문학은 당신을 완벽하게 치유할 수 없다"면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려 글을 썼다"고 했다.
책에는 앤 카슨의 <녹스>, 조앤 디디온의 <푸른 밤> 등 가족을 잃은 감정을 다룬 작품들이 인용돼 있다. 그 역시 독자로서 책에서 위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아이트 작가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작가가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 자체가 제게 의미가 있었다"며 "문학의 놀라운 점은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든 문학에 닿을 수 있고 비슷한 슬픔과 기쁨을 겪은 게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처음에는 고통, 고통, 고통뿐이지만 고통은 뭔가를 가르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뒤엔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열리고 인생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그게 칼이 제게 남기고 간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대규모 참사나 급작스러운 상실을 겪은 한국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를 묻자 그는 잠시 말을 고른 뒤 대답했다. "멍청한 말 같지만,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줍니다. 칼이 떠난 뒤 저는 매해 애통함의 물결이 낮아진다는 걸 느껴요. 상실로 고통받는 사람 곁에 친구나 가족이 함께 있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요. 인간은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당신은 견딜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