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외국인이 '역대급' 규모로 주식을 내다 팔았지만, 여의도 증권가에선 이런 대규모 매도세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지능(AI) 거품론 우려 경감과 함께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완화하면서 다시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1월 한 달 동안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14조456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월별로 살펴보면 코로나19 충격파가 극심했던 2020년 3월(12조5174억원)도 압도한 역대 최대치다.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관세 불확실성이 부각되던 지난 4월까지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지만, 이후로는 줄곧 순매수세로 일관했다. 특히 9~10월에는 약 13조원을 순매수하면서 연간 누적 순매수로 전환했다. 하지만 지난달 들어 분위기가 반전되며 연간 누적으로도 매도 우위로 다시 바뀌었다.
외국인의 매도 폭탄은 반도체에 쏠렸다. AI(인공지능) 거품론이 재부각되면서 11월 들어 한국 반도체주를 대거 정리한 것이다. 이 기간 외국인 순매도 1, 2위는 SK하이닉스(8조7309억원)와 삼성전자(2조2292억원)다.
SK하이닉스에 특히 매도세가 집중된 건 '오픈AI'의 진영에 속한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구글이 공개한 챗봇 '제미나이 3'이 주요 벤치마크에서 챗GPT 5를 앞서고 모델 훈련 효율 개선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면서, AI 패권 경쟁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진 오픈AI가 위협을 받고 있다. 외국인은 최근 두 달간 SK하이닉스만 13조2437억원어치 팔아치웠다.
하지만 증권가는 이달부터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의 수급이 회복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점쳤다. AI 거품 우려를 덜어내고 있는 데다, 미국의 유동성 경색이 완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줄 것이란 판단에서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AI 투자의 수익성 논란은 이어지겠지만 AI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2028년까지 이어질 전망인데 이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는 우호적인 환경"이라며 "코스피의 외국인 지분율은 반도체 슈퍼사이클 시기에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AI 투자 경쟁으로 반도체 시장의 슈퍼사이클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코스피의 외국인 지분율은 현재 35%로 2001년 이후 평균 수준"이라며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감안한다면 외국인의 추가적인 매수 여력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계 자금이 과거 6개월 이상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는 구간은 항상 원·달러 환율 1200원 이하의 원화 강세 시기였다. 때문에 미국계 자금 입장에서 원화가 약한 상황에서 추세적으로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일 실익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11월 외국인 매도세가 강하게 나타나며 수급 우려를 자극했지만, 추세적인 매도로 연결되진 않을 전망"이라고 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