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달러 원가, 1300달러 청구서…비만 독점이 만든 '유전무병' 시대 [현민석의 페어플레이]

입력 2025-12-02 07:00
수정 2025-12-02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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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자본시장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에 베팅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독점하며 인류의 지능을 장악한 엔비디아(NVIDIA)의 질주가 무섭지만, 그 이면에서 조용히, 그러나 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인류의 식욕을 통제하는 비만치료제 시장이다.

덴마크의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와 미국의 일라이릴리(Eli Lilly). 이 두 제약 공룡은 '위고비(Wegovy)'와 '젭바운드(Zepbound)'라는 무기를 들고 전 세계 시가총액 순위를 뒤흔들고 있다. "맞기만 하면 살이 빠진다"는 이 기적의 주사제는 단순한 의약품을 넘어, 현대인의 구원자가 됐다. 없어서 못 파는 품귀 현상이 몇 년째 이어지고, 골드만삭스의 2024년 리포트는 이 시장이 2023년 60억 달러에서 2030년 1300억 달러(약 180조 원)까지 20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 예언했다.

하지만 화려한 주가 그래프와 장밋빛 전망 뒤에는, 법률가의 시선으로 볼 때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한 '독점의 디스토피아'가 도사리고 있다. 혁신의 대가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청구서가 인류에게 날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270배 폭리 구조?공정거래법 관점에서 이 시장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포착되는 위험 신호는 비상식적인 가격 구조, 즉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의한 가격 책정이다. 최근 예일대 연구진과 미국의학협회(JAMA) 등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GLP-1 계열 비만치료제 한 달 치 분량의 제조단가는 고작 0.89달러에서 4.73달러(약 6500원) 수준에 불과하다.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5달러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약의 미국 내 정가(List Price)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가 약 1349달러(약 188만 원),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가 약 1059달러(약 148만 원)에 달한다. 제조단가 대비 판매가격이 무려 270배에 이른다. 명품 가방이나 보석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비율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의 70% 이상을 이 두 기업이 완벽하게 양분하고 있는 복점(Duopoly) 구조 하에서, 기업은 가격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소비자는 대체재를 찾을 수 없고, "싫으면 관두라"는 식의 배짱 가격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는 혁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범위를 넘어선, 인간의 생명과 건강권을 볼모로 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즉 과도하게 높은 가격 설정(excessive pricing)의 전형이다.
경쟁 질식시키는 '특허 덤불'더 큰 문제는 이 독점이 영구화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두 기업은 후발 주자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이른바 '특허 덤불(Patent Thicket)'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단순히 약물 성분(분자 구조)에만 특허를 거는 것이 아니다. 약물을 주입하는 주사기 디바이스(오토인젝터)의 스프링 구조, 투여 용량, 제조 공정 하나하나에 촘촘하게 특허의 덫을 깔아놓는다. 이는 저렴한 복제약(바이오시밀러)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법률적 장벽이다. 실제로 이로 인해 많은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이 제품 개발을 완료하고도, 복잡한 특허 소송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출시를 포기하거나 미룰 우려가 있다.

이것은 '혁신 보호'라는 특허 제도의 본래 취지를 악용해 경쟁을 질식시키는 행위다. 이를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이라 부르는데, 사소한 변경으로 특허 기간을 계속 연장하여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꼼수다. 공정한 시장이라면 마땅히 등장해야 할 저가 경쟁 제품들이 이 법률적 장벽 뒤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무병(有錢無病) 시대, 건강의 계급화독점의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전가된다. 비만은 단순한 미용의 문제가 아니라 당뇨, 고혈압, 심혈관 질환 등 만병의 근원이 되는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한 지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기형적인 가격 구조하에서 비만 치료는 철저히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돈 있는 사람은 한 달에 200만 원을 호가하는 주사를 맞으며 날씬하고 건강한 삶을 누린다. 반면, 돈 없는 서민은 비만과 그로 인한 합병증의 고통 속에서 방치된다. 바야흐로 돈이 있으면 병이 없고(유전무병), 돈이 없으면 병을 얻는(무전유병) 잔인한 건강 계급사회가 열린 것이다.



이는 국가 재정에도 시한폭탄이다. 비싼 약을 건강보험으로 커버해주자니 건보 재정이 파탄 날 지경이고, 비급여로 남겨두자니 국민의 건강 불평등이 극심해진다. 두 기업의 탐욕스러운 가격 정책이 전 세계 보건 시스템을 인질로 잡고 흔드는 형국이다.

실제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등 일부 정부 기관은 재정 부담을 이유로 공무원 보험에서 비만치료제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다. 기업의 이익 추구가 공공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위협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경쟁 당국, '생명의 저울'을 들어야 할 때이제 비만치료제 시장은 단순한 제약 산업의 영역을 넘어섰다. 이는 공정거래와 보건 인권이 교차하는 최전선이다. 각국 경쟁 당국은 이 '비만 듀오폴리'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첫째, 제조단가 대비 과도하게 높은 가격이 시장지배력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행위는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중대 위법 행위다.

둘째, 특허권 남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특허 쪼개기나 특허 덤불 전략이 후발 주자의 진입을 부당하게 막고 있는지 살피고, 필요하다면 공익을 위해 특허권을 제한하는 강제실시권 발동 등 강력한 조치까지 검토해야 한다.



셋째, 의약품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특정 기업이 인류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약품을 독점하고 공급량을 조절하며 국가를 상대로 협상력을 행사하는 것을 견제할 글로벌 거버넌스가 시급하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인류를 비만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혁신적인 약을 개발한 것에 대한 보상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 이윤이 '경쟁 없는 독점'과 '생명에 대한 인질극'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시장 경제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이다.

인류의 건강과 수명이 단 두 기업의 이사회실에서 결정되게 놔둘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의 약보다, 그 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흐를 수 있게 만드는 정의로운 시장이다. 탐욕에 찌든 공룡들이 살 뺄 권리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공정거래위원회와 정부가 공정의 칼을 빼 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