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일 "금감원 업무 전반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소비자보호감독총괄본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말까지 조직 개편을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 분리와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직 개편안 공개…소비자보호감독총괄본부 신설이 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서 취임 후 첫 출입 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그동안 금융 소비자 보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을 하나씩 개선하겠다"며 조직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감원은 사전예방적 소비자보호 체계 확립을 위해 소비자보호감독총괄본부를 신설키로 했다. 이달 말까지 조직 개편을 마치고 내년 1월 중 인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조직 개편에 대해 이 원장은 "그간 금소처가 별도 본부로 운영되며 소비자 보호가 금감원 전체가 아닌 금소처의 업무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소비자보호감독총괄본부를 신설해 은행, 보험, 증권 등 각 권역의 민원 및 상품 검사 업무가 원스톱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 시스템은 사후 배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금융 상품이 출시됐을 때, 설계상 하자가 없는지도 다뤄야 할 것 같다. 상품 설명 과정도 어떻게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을지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은 경영진이 직접 민원인을 만나는 '금융민원 상담 데이'를 통해 금융 소비자 보호 의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금감원의 노력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분리할 수 없어"
앞서 정부와 여당은 금감원에서 금소처를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금융시장 불안 등을 이유로 사실상 백지화했지만, 최근 일부 여당 의원이 "입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어서 잠시 중단한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조직개편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금소처 분리에 대해 이 원장은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의원님들이 지적한 부분은 유념하고 있다. 금소처 분리가 언급된 이유에 대해 잘 성찰하고 있다"면서도 "소비자 보호를 위해 가야 할 길이 '분리'만은 아니다. 금융 감독이라는 기능 자체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것으로 확신한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를 분리한다는 접근 자체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도 반대했다. 이 원장은 "현재 금감원은 자체 조직권, 예산 편성권도 없다. (경영 활동 전반에 대해) 금융위원회라는 합의체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공공기관에 지정되면 금융위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국내에 2개 기관 이상의 감독을 받는 공공기관은 없다. 이게 바람직 한 건가"라고 반문했다.
앞서 최근 금융회사 제재 수위에 대해 이 원장과 금융위의 이견이 잇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 공개된 제16차 금융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이 원장으로 추정되는 위원과 다른 위원이 금융회사 영업정지 제재 여부를 두고 표결까지 벌였다.
이 원장은 금융위와는 '원팀'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한 명의 위원으로서 느끼는 바를 편하게 말씀드렸을 뿐"이라며 "금융위와 항상 긴장하고 이런 관계는 아니다. 다만 정책적인 부분이나 감독 부분에 있어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앞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은행에는 총 2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사전 통보했다. 주택 담보인정비율(LTV) 담합 관련 과징금도 예고됐다. 건전성이 악화하며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 포용 금융 등 금융 정책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원장은 "소비자 보호 기조를 관철하되 정책 관련 우려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안해서 진행하고 있다. 제재 수위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도 이런 흐름이 반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층, 오죽하면 해외투자 하겠나"고환율 문제 등 금융 시장 현안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놨다.
국민연금이 환헤지에 나서야 한다고 보냐는 질문에 이 원장은 "기금은 함부로 말할 영역이 아니다. 환헤지 여부는 그쪽(국민연금공단)에서 결정해야 한다"라면서도 "외환 시장에서 국민연금은 공룡이 되어 버렸다. 환율이 문제가 되면 자산 양극화가 더 심화한다. 급여가 실시간으로 할인(디스카운트)되고 있다. (국민이) 분노해야 하는 위기"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외환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짚었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 상승의 요인으로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투자를 꼽았다.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 '쿨(cool)하다'는 이유로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풍토가 있다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본인) 자산의 1%는 해외 주식"이라며 "오죽하면 청년들이 해외투자를 하겠나"라고 밝혔다.
전날 이 원장은 '환율 대응을 위한 4자 협의체' 회의에 참석했다. 금감원은 금융 회사를 대상으로 해외 투자 관련 투자자 설명이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할 계획이다. 이 원장은 "해외 주식 투자는 청년에 대한 이슈는 아니다. 주류는 40~50대다. 위험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투자 판단을 하고 있는지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전 10시 시작된 간담회는 당초 1시간으로 계획됐지만, 이보다 길어져 약 1시간 34분 동안 진행됐다. 이 원장은 원장직을 '극한직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후배가 이쪽으로 오겠다고 하면 말릴 것"이라며 "전문 영역이 아니어서 힘들었던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밖에서는 금감원을 엄청난 권력 기관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임직원들의 급여 수준은 금융권의 60%대 수준"이라며 "시간외 수당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형편없는 기관장"이라고 토로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