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와 교감한 르 코르뷔지에, 의도적 긴장 일으킨 안도

입력 2025-12-05 12:13
수정 2025-12-05 15:46
두근두근. 아직도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말로만 듣던, 사진으로만 보던 서양근대미술관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면서 가졌던 흥분된 마음이었다.

도쿄 우에노공원의 한 모퉁이에 조그맣게 자리한 건물은 첫인상이 왜소해 보였다. 전면 42미터의 폭에 높이는 3층, 녹색 빛이 감도는 자갈로 마감된 사각 박스의 건물은 크기에서 오는 실망감이 있었다. 그러나 필로티 밑으로 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우측으로 꺾으면서 건물의 중앙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감성이 놀라움으로 치환되었다.

삼각빛 아래 숨 쉬는 공간

가운데 기둥이 받치고 있는 삼각뿔 모양의 천창이 하늘로부터의 빛을 모아 실내를 비추고, 전면의 오픈된 발코니와 셋백된 하부 공간, 그리고 지그재그 모양의 측면 경사로가 한꺼번에 눈에 확 들어왔다. 세계적인 거장 르코르뷔지에가 만든 건물의 심장부에 섰다는 흥분이 이 기분을 고조시켰다. 공간의 수평 폭과 깊이, 그리고 높이에서 오는 친근한 공간 느낌과 함께 깔끔하면서도 세련되며, 재료의 변화에서 오는 자연스러움까지, 젊은 건축학도의 흥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한 일건건축사무소(대표 황일인)에 근무하던 시절, 일본 출장길에 후쿠오카로부터 도쿄로 이어지는 건축 기행을 할 수 있었다. 고베에서 당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안도 다다오의 ‘타임스’ 건물을 먼저 보게 되었다. 모듈화된 벽돌의 단정한 벽 쌓기, 깔끔하게 마감된 노출콘크리트, 그리고 인접한 하천과 엮어지며 위아래로 연결되는 계단과 작은 통로, 6분의 1 크기의 낮은 원호의 지붕 돔 등 재미있는 건축적 구성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도쿄에 도착하여 르코르뷔지에의 서양근대미술관을 경험한 순간, 안도 다다오의 건물은 안중에서 없어졌다. 서양근대미술관에는 안도의 건물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비로움이 감춰져 있었다. 미술관 2층의 전시 공간을 둘러보고, 연속된 통로로 이동하다가 의아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아니 다른데’, ‘무언가 이상해’라고 생각이 든 순간, 그곳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이 아니라 준공 후에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한 증축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르코르뷔지에의 서양근대미술관은 모듈러라고 하는 그가 발명한 건물척도법이 철저하게 적용된 건물이다. 건물의 높이, 기둥의 두께와 간격, 벽의 두께, 난간의 높이, 재료의 폭, 길이 등 건물의 거의 모든 부분이 인체에서 오는 수치와 매칭이 되도록 한 것이다.

나는 그의 모듈러가 그러한 특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고, 그것이 그 건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비한 공간 체험의 작용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된다. 서양근대미술관 2층 전시 공간의 중간층 구조가 만들어내는 ㄴ자형 단면 공간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일으키는 현대적으로 많이 쓰이는 공간구성법이지만, 여기서도 기둥의 배열과 낮은 천정에 그의 비법인 모듈러가 적용됨으로서 그 효과를 증폭시켰다고 생각된다.

의도된 긴장이 주는 감동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산에서는 의도된 구성을 통해 사람들을 긴장감으로 끌고 들어가는 르코르뷔지에와는 다른 느낌의 매력을 보여준다. 시야가 막힌 벽을 돌면 ‘짠’하고 나타나는 기법을 적용하여, 의도된 동선을 따라 나타나는 강렬한 색상의 거대한 조각물과 돌덩어리의 단조로운 건물은 분명 시각적 임팩트를 준다.

또한 산 정상에 만들어진 연못은 하늘을 주로 비추며 건물을 돋보이게 하고, 실내로 들어서면 강한 직선과 삼각형, 원 같은 기하학적 형태가 돌과 콘크리트라는 재료와 대비를 이루면서 의도된 공간의 강한 힘을 느끼게 한다. 좁고 높은 복도 공간은 벽면의 수평으로 길고 좁은 찢어진 틈과 함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서양근대미술관에서처럼 공간에서 오는 신비하게 교감되는 미묘한 느낌을 발산하고 있지는 않다.



뮤지엄산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의도된 긴장과 그에 따른 희열을 맛보게 하지만, 고전적인 명작 영화가 보여주는 듯한 애틋하고 감성적인 감동 같은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안도 다다오의 건물은 기하학적 형태의 건축공간과 반반한 노출콘크리트 재료의 강한 이미지, 그리고 어떤 특정의 장면에 대한 기대감을 갖도록 하는 의도된 동선을 통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건물을 경험할 때면 복도나 벽, 재료와 면 분할 등이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반응하도록 굉장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안도에게는 르코르뷔지에의 모듈러와 같은 신비한 공간구성의 비법이 내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