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외환당국 "상시적 환헤지로 환율 쏠림 차단"…국민연금은 난색

입력 2025-11-30 17:57
수정 2025-12-01 01:36
지난 9월 말 현재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자산은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를 합해 798조540억원에 달했다. 국민연금이 상시적 환헤지 중단을 결정한 2015년 124조1980억원에 비해 6배 이상 커졌다. 올 들어 9월까지 국민연금의 신규 해외 투자 규모는 약 310억달러로 같은 기간 무역수지 흑자 약 503억달러의 60%에 달했다.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을 밀어 올리는 주요인으로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를 지목하고, 환헤지를 부활해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환헤지로 이익 확정 vs 비용 부담만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과 ‘환율 안정 4자 협의체’를 출범시킨 후 연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국민연금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해외 투자가 단기간에 집중돼 (환율 급등으로) 물가 상승과 구매력 약화에 따른 실질소득 저하로 이어질 경우 국민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튿날인 2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이 투자금을 회수할 때 원화가 절상 국면에 접어든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국민의 노후 자산을 보호하려면 어느 정도 환율로 이익을 봤을 때 환헤지 등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5년 환헤지를 중단한 국민연금은 2022년 원·달러 환율이 정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면 해외 투자 자산의 5~10%까지 헤지할 수 있는 ‘전략적 환헤지’ 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계엄 사태 여파로 환율이 급등한 올해 초 단 한 번 활용했다.

외환당국은 환율이 급등락한 뒤에야 헤지에 나서는 전략적 환헤지 대신 상시적 환헤지를 부활하면 환율의 이상 쏠림현상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이전처럼 해외 자산을 100% 환헤지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지만, 일정 비율만 헤지하면 환율과 국민연금 수익률을 동시에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외환당국의 견해다.

국민연금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상시적 환헤지 재개에 강하게 반대하는 분위기다.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2015년 도입한 ‘자연헤지’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국민연금 같은 초장기 투자자는 환율의 단기 변동에 신경 쓰지 않아도 결국 평균 환율에 회귀하기 때문에 해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가며 인위적인 환헤지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또 환율 상승의 원인이 재정 확대와 국채 발행 증가, 잠재성장률 하락, 한·미 간 금리 차 등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만약 이런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아 원화 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달러 자산을 보유하는 게 기금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게 국민연금의 판단이다. 국민연금의 환헤지 물량을 소화하기엔 국내 외환시장 규모가 작은 점도 상시적 환헤지 부활에 반대하는 현실적 이유다. ◇외화채로 달러 조달 가능할까외환당국은 국민연금이 해외채를 발행해 달러를 조달하는 방안도 가능한 카드로 고려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는 것에 비해 환율에 주는 충격을 줄이는 방식이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최대 1000억캐나다달러(약 104조원)까지 외화채를 발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는 부담을 덜고 레버리지 효과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는 ‘1300조원의 자기자본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외화채 발행 비용과 이자를 물어가며 달러 빚을 낼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 여론이 컸다. 하지만 고환율이 장기간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외화채 발행으로 얻는 효과가 비용보다 클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은 이 역시 반대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채권 발행은 국채를 하나 더 만드는 꼴이어서 국가부채 논쟁의 한복판으로 끌려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외화채 발행을 위해서는 별도의 신용등급을 부여받아야 하는데, 그 시점부터 채권단의 간섭이 시작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에 이어 해외 채권 투자자와 외국 정부까지 시어머니가 늘어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영효/남정민/이광식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