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혁신 옥죄는 규제 그물망

입력 2025-11-30 17:37
수정 2025-12-01 00:43
국가 아젠다 중 규제 개혁은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심각하게 어려운 과제다. 이해관계가 얼기설기 얽혀 있고 제도의 적시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기득권화된 이익집단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뒤를 노련한 관료제와 탐욕스러운 정치권이 지켜주는 상황이 흔하다. 이런 기존 규제 구조에 신흥 기술이 각별히 고통받고 있다. 촘촘한 규제 그물에 갇혀 신음하는 형국이다. 문제는 그 그물이 원래 신흥 기술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어서 효과도 없고 혁신을 방해하는 부작용만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규제 개혁 238건을 정부에 건의했다. 그 내용 가운데 신흥 기술을 창출하는 반도체 공장 및 수소와 관련된 사항 몇 가지를 사례로 짚어보고자 한다. 현행 건축법상 자동식 소화 설비 등을 갖춘 공장 시설에는 75m 이내에 직통 계단을 설치하고 대피 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규제가 있다. 거의 무인화된 첨단 자동화 시설인 반도체 공장에 말이다. 화재 발생 시 대피할 사람이 별로 없다. 2주 전 충남 천안에서 일어난 대형 물류창고 화재도 축구장 27배 이상의 면적이 전소됐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거의 무인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공장 설비 내부에 설치된 각종 밸브나 연결을 검사하는 규제들로 다양한 부품의 검사 주기를 맞추려면 장비 분해와 해체를 하는 경우가 많고, 여차하면 공장 건설과 가동을 수주간 멈춰야 한다. 각종 화학물질이나 가스 설비 설계와 배치, 관리도 비슷한 상황이다. 세상에 없는 첨단 과학과 기술을 동원해 세계 최초로 공장을 설계해서 짓고 있는데, 불합리한 규제로 인한 건설 기간 지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손해를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국가 경쟁력에 미치는 부작용도 이루 말할 수 없다.

한편 청정수소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탄소 전원만 사용해야만 한다는 요건이 정부 고시다. 안정적인 전기 공급은 수소 제조 시스템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지만, 규제로 인해 불안정한 전기 공급 위험에 노출돼 있다. 연구개발(R&D)만을 위해 사용하는 액체 수소(LH2) 용기에 대해서도 국내 제조자 등록을 강제하고 있다. 사업이 아니라 연구개발을 하는 연구자와 기관에 제조자 등록은 매우 부담스러운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또 수소 용품 보관·관리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위험 수준이 존재하는데도 현행 법률은 무턱대고 극도의 고위험물질로 취급해 가장 수동적인 입장으로 규제하고 있다. 지하에 보관하거나 모빌리티를 활용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거시적 차원으로 눈을 돌리면 국가 도약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규제 덩어리는 지난 수십 년간 여전히 틀어박혀 있다. 수도권 입지 규제, 고용 관련 규제, 대학 규제, 기업 지배 구조 등이 그것이다. 근대적 가치를 지금의 현대사회 구조 속에서 수호한다는 안이함 내지는 무책임이다. 수도권에 최고의 연구개발과 과학을 하는 설비와 커뮤니티를 만들어 한국 인재뿐만 아니라 해외의 유망한 인재에게도 매력적인 직장을 공급해야 한다.

고용과 해고를 극단적으로 자유롭게 해 기업이 원하는 사람을 뽑게 하고, 청년들도 자기가 원하는 직장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청년들이 원하는 시기에 취직하고 경력 시장을 통해 계속 진화하고 혁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처럼 해고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청년에게 첫 직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비극에 눈을 감는 것은 너무나 심각한 위선이다. 지난 십수 년간 대학 등록금을 동결하고 수없이 많은 규제로 대학의 자율성을 제약한 결과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와 지성 수준은 국가를 위대하게 할 수도, 청년을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게 됐다.

수십 년 전 필요했던 단순 제조업 중심의 많은 기업 지배 규제도 업데이트해야 한다. 주력 기업이 첨단화하고 있는 트렌드 속에서 이 요구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다. 투자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AI 시대 초입에서 은행이 규제 때문에 제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기업들의 진지한 요구를 가볍게 물리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