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가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제작비 대비 100배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제98회 미국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옛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일본 대표로 진출한다. 이 영화는 중국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같은 아시아 전통 공연 예술을 다룬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완벽한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죽음의 에너지까지 끌어다 쓰는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국보’가 최근 20년간 본 일본 영화 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국내 관객은 점차 줄어들어 10만 명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왜 국내에서는 웰메이드 독립영화 정도로 평가받을까. 이 영화의 미학이 국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영화의 원작은 일본 전통 공연 예술인 가부키를 주제로 한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이다. 최고의 가부키 배우인 국보가 되는 과정을 그리는 이 영화에서 가부키는 단순한 소재를 넘어선다. 어떤 일을 하든 어느 누구에게든 해당되는 이야기로 확장 가능하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영화는 1964년 일본 나가사키, 야쿠자 수장의 신년회 장면에서 시작한다. 수장의 아들 소년 기쿠오(구로카와 소야 분·아역)는 간이 무대에서 온나가타(女形·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 배우)로 가부키 연기를 한다. 가부키 명가(名家)의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 분)는 기쿠오의 재능에 놀란다. 느닷없는 반대파의 공격으로 기쿠오는 눈앞에서 아버지를 잃는다. 중정에서 총격을 받고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아버지, 그 위로 하얀 눈이 내리는 장면은 기괴하게 아름답게 보인다. 기쿠오는 그 광경을 가슴에 아로새긴다.
기쿠오(요시자와 료 분)는 하나이의 집에서 수제자로 길러진다. 그 집의 외아들로 동갑내기인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 분)와 함께 연습하며 친구로, 라이벌로 성장한다. 이 영화는 인간의 결핍에 기반한 욕망을 놓치지 않는다. “너의 피를 한 컵 들이마시고 싶다”는 기쿠오, 아버지의 눈엔 친아들이지만 기쿠오보다 재능에서 밀리는 슌스케의 결핍이라는 조건과 한계는 두 젊은이의 아픔과 예술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른다.
아버지의 죽음과 눈(雪)의 아름다운 이미지는 기쿠오의 가슴에 열정의 모멘텀으로 작용한다. 이 이미지는 영화의 엔딩에서 국보가 된 기쿠오가 공연을 끝내는 무대에서 가슴 속 회한의 이미지인 눈과 겹쳐진다.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프로이트적으로 보면 에로스적 에너지고, 아버지의 죽음과 자기 파괴적 충동은 타나토스다. 열망과 죽음에의 의지는 반복되며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순백색 눈의 이미지에서 나오는 미학이 바로 이를 시각화한 장치가 된다.
극한에 이르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에너지가 조합돼 완벽한 예술로 향하는 영혼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최고가 되려면 가져야 할 자세이며 삶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엔딩에서 눈을 보며 “참으로 아름답구나”를 내뱉는 기쿠오의 심경은 최선을 다해 구현된 작품을 보는 우리의 정수리에 내리꽂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