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전해액 기업 엔켐이 글로벌 1위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CATL과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월 쩡위친 CATL 회장과 실무진이 한국을 방문해 국내 소재 수급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결과다. CATL이 유럽, 동남아 등에 현지공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현지공장을 갖추고, 삼원계 배터리에도 특화된 한국 소재 비중을 늘리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5년·35만t…엔켐 역대 최대 단일 고객 공급
엔켐은 27일 "글로벌 톱티어 셀 제조사와 연간 7만t 규모 전해액 공급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엔켐측은 계약 대상과 계약상대방의 국적, 공급처 등은 비공개 계약조건에 의해 밝히지 않았다. 다만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계약 대상은 CATL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기간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총 5년간이며, 총 물량은 35만t이다. 전해액 현재 판매 단가 기준으로 수주 금액은 연간 약 3000억원, 5년간 총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엔켐이 그동안 수주한 계약중 최대 규모의 단일 계약이다. 엔켐은 지난해 총 5만t의 전해액을 공급했는데 이번 계약 한건의 규모만 7만t으로 1.4배다. 공급 물량은 CATL이 건설중인 헝가리, 스페인 생산공장에 납품될 예정이다. CATL은 수십조원을 투입해 헝가리에 100GWh(기가와트시), 스페인에 50GWh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중이다. 독일 공장도 수십 GWh 규모로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계약 물량의 일부는 CATL의 인도네시아·중국 공장 등에 투입될 것으로 관측된다.
엔켐은 CATL과의 계약이 실적 반등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엔켐의 지난해 매출은 3657억원이었다. 한해 매출과 유사한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매출이 2배가까이 늘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크게 떨어졌떤 공장가동률을 높일 수 있어 흑자전환도 예상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엔켐이 해외 현지 공장을 짓고 있는 또다른 중국 회사와도 영업활동 중이라 추가 수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왜 CATL은 한국 전해액을 택했나
이번 계약의 배경에는 글로벌 배터리 지형의 변화가 있다는 분석이다. CATL을 포함한 중국 기업들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에서는 압도적 우위를 갖지만, 삼원계(NCM·NCA) 배터리 기술력은 한국이 앞서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중국 소재사들 역시 LFP에 특화돼 있다.
하지만 CATL은 유럽 등에서 삼원계 배터리 비중을 늘리려 하고 있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장착하는 고가 전기차 라인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전세계 최고 수준의 삼원계 기술력을 갖춘 한국 배터리 소재, 장비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정책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연합(EU)은 공급망 역내화 및 다변화를 진출 기업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를 각종 인센티브와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역내에 공장 설립을 유도해 부가가치 및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지 진출한 CATL 등은 배터리 소재의 일정 물량을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아직 유럽 현지공장을 갖춘 중국 소재 기업들이 많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소재업체들은 중국 정부 보조금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유럽 현지 진출 규모가 많지 않다"며 "CATL 입장에서 현지 대규모 공장이 있는 한국 업체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엔켐은 폴란드(연간 15만t), 헝가리(연간 7만t)에 대규모 현지 공장체제를 갖추고 있다.
유사한 이유로 CATL이 또다른 핵심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등 분야에서 한국 업체와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실제 한국 기업들과 수주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