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중단 내몰린 홈플러스 "구조조정·채권자 양보 없인 M&A 불가"

입력 2025-11-28 09:31
이 기사는 11월 28일 09:3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가전 인수합병(M&A)이 난항을 겪으면서 신규 자금 투입이 지연되면서다. 회생 신청 이후 주요 납품업체가 물품 공급을 미루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전기세 등 각종 세금도 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현금이 말라 직원 월급도 제때 주지 못하게 되면 홈플러스는 스스로 영업을 중단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비주력 점포 및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동시에 채권자들의 협조를 받아내 인가전 M&A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 스스로 문 닫을 위기2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8~10월 홈플러스 매출은 1조462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7838억원)과 비교해 18.0% 감소했다. 회생 신청 직후인 3월엔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3.1%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최근 들어 매출 감소 폭이 더욱 커졌다. 회생 신청 후 대형 협력 업체들이 물품 공급을 줄인 여파다.

대형 협력 업체들은 홈플러스에 물품 공급 조건도 까다롭게 설정하고 있다. 주요 업체들은 거래 조건으로 보증금 및 선급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어 홈플러스는 여기에만 23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묶여있는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종합부동산세, 부가가치세, 지방세, 재산세 등 총 700억원에 달하는 세금도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 220억원 수준의 전기세 미납분까지 합치면 920억원에 이르는 각종 세금 및 비용 처리를 못하고 있다. 이대로면 연내 홈플러스가 직원 임금 체불 위기에 내몰려 스스로 영업을 중단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홈플러스 인가전 M&A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홈플러스 공개매각은 지난 26일 진행된 본입찰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무산된 상황이다. 회생 계획안 제출 마감일은 다음달 29일로 아직 시간이 남아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새로운 인수 후보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영업 중단으로 근로자들이 일할 곳을 잃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걸 막기 위해 빠른 기업회생 신청을 택했지만 M&A가 지연되며 채권 동결과 무관하게 홈플러스가 더 이상 영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치권을 중심으로 'MBK파트너스 때리기'에 골몰하는 사이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홈플러스를 살리기 위해선 당장 홈플러스의 비주력 점포 및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 인가전 M&A가 성사될 때까지 홈플러스가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MBK파트너스는 당초 시흥점 등 15개 비주력 점포의 영업을 중단하고, 매각하려 했으나 정치권의 만류로 잠정 보류한 상태다. 회생 신청 이후 매출이 급감하고 있지만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하지 않았다.

대형 협력업체들의 협조도 필요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회생 신청 이후에도 납품받은 물건의 대금은 공익채권으로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있지만 주요 대기업 협력사들은 리스크가 커졌다는 이유로 거래 조건을 빡빡하게 설정하고 있다"며 "이 조건만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도 수천억원의 현금 흐름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다가온 채권자의 시간결과적으로 인가전 M&A를 성사시키기 위해선 채권자들의 협조도 필요하다. 현재의 조건으로는 인수 후보가 없다는 게 공개매각 무산으로 확인된 만큼 채권자들이 양보해 인수 후보 측에 보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줘야 M&A 성사 가능성이 되살아난다.

삼일PwC는 일부 회생채권의 승계가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워 인수 후보들을 설득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인가전 M&A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및 회사채 인수를 통해 신규 자금을 투입한 뒤 이 자금으로 회생채권을 모두 변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회생채권 승계가 가능하다는 건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회생채권 변제 의무를 일부 유예해준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인수자의 실질적인 인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일각에선 채권 승계를 허용해주는 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인 3조7000억원보다 낮은 가격에도 매각할 수 있도록 일종의 가능성의 문을 열어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채권 승계라는 건 인수 후보가 당장 조달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부족할 때 의미가 있는 선택지"라며 "인수대금으로 청산가치 이상을 쓸 수 있다면 채권 승계 자체가 필요 없기 때문에 역으로 생각하면 청산가치 아래로도 매각 의사가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채권을 승계하는 건 채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청산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홈플러스를 매각하는 것 역시 채권단 전원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나아가 일부 채권의 출자 전환과 금리 인하 등 채무를 조정하는 협의도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홈플러스 청산가치(3조7000억원)가 회생채권 규모(2조9000억원)보다 크긴 하지만 채권단 입장에서도 홈플러스를 파산하고 '빚잔치'를 벌이는 게 마냥 이로운 건 아니다. 홈플러스가 파산한 뒤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채권을 회수하는 과정이 길게는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미확정 우발채무가 남아있어 청산가치만 믿고 파산을 주장하기도 어렵다. 홈플러스가 파산하고 점포가 문을 닫을 때 장기 임대 계약을 맺은 점포의 경우 건물주에게 위약금을 내야 한다. 이 위약금 규모가 최대 9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홈플러스를 청산해도 회생채권과 위약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정치권에선 홈플러스를 살리기 위해 유암코를 등판시킬 채비를 하고 있다. 유암코는 채권을 싸게 인수하고, 채무를 조정한 뒤 신규 자금을 투입해 부실 회사를 정상화하는 일을 하는 공적 성격의 기관이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당정이 협력해 유암코 등 공적인 구조조정 회사가 불투명한 채무 구조를 조정, 전문 유통경영을 할 회사가 인수에 나서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해 보겠다"고 했다. 다만 공적자금을 투입하더라도 노동조합 등의 반대로 막혀있는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홈플러스가 살아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