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가 이자 덜 낸다고?…'관치금융'에 뒤틀린 가계대출

입력 2025-11-27 13:25
수정 2025-11-27 13:29

최근 가계대출 전반에 걸쳐 저신용자가 신용도가 더 높은 사람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 따른 ‘풍선 효과’와 취약계층 지원을 확대하는 포용 금융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원금과 이자를 성실히 갚은 고신용자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27일 은행연합회의 지난달 은행별 가계대출 금리(신규 취급 기준) 공시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신용점수 600점 이하의 금리는 연 5.48%로 751~800점(연 5.69%)보다도 낮았다. 600점 이하의 경우엔 9월보다도 금리가 2.01%포인트 하락했다. 신한금융 계열사인 제주은행도 600점 이하의 금리가 연 5.59%로 한 단계 위인 601~650점(연 9.61%)을 크게 밑돌았다. SC제일은행(연 4.91%)과 iM뱅크(연 4.65%), 부산은행(연 6.9%) 등도 신용점수 600점 이하인 사람들이 그보다 높은 등급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주택담보대출(분할상환방식)의 경우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에서 모두 이 같은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신한은행의 경우엔 600점 이하(연 3.67%)가 최고 신용점수인 951~1000점(연 4.14%)보다 낮았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최대한 덜 내리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인 가운데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정책대출 신청이 지속적으로 접수된 영향으로 금리가 뒤틀리는 현상이 빚어졌다는 평가다. 올 들어 공급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보금자리론’의 경우엔 지난 2월부터 지난달까지 9개월 연속 연 3.65~3.95%의 금리를 유지 중이다. 과거 주담대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프리워크아웃’으로 돈을 빌린 사람들의 대환대출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것도 저신용자의 평균금리를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프리워크아웃 대출을 대환할 때는 최초에 빌렸을 때보다 금리를 높게 산정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신용대출에서도 일부 신용점수 구간에서 금리 역전이 발생했다. 수협은행은 신용점수 651~700점의 금리(연 7.09%)가 이보다 한 단계 높은 701~750점(연 10.5%)보다 3%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제주은행(연 9.18%)과 부산은행(연 9.58%), 광주은행(연 12.17%), iM뱅크(연 12.78%) 등의 600점 이하가 601~650점 혹은 651~700점보다 금리가 낮았다. 은행들이 포용 금융에 팔을 걷으면서 새희망홀씨대출, 사잇돌대출 등 취약계층 대출상품의 금리를 낮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선 금리 역전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금리 부담을 줄일 것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현재 금융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금융 계급제”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는 그 후 햇살론 금리를 기존 연 15.9%에서 연 12.9%로 내리고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배려자에게는 연 9.9%까지 인하하는 방안을 내년도 예산안에 포함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