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IB’ NH투자증권이 내건 IMA 승부수 [케이스 스터디]

입력 2025-12-02 08:07
수정 2025-12-02 08:08
[케이스 스터디]
흔히들 부잣집 아이들은 자생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부모의 후광없이 스스로 새로운 사업에 나서 성공한 사례를 쉽게 찾아 보기 힘들다. 부잣집 아이들과 비슷한 기업 유형이 대기업 계열의 광고회사나 증권회사 등이다. 든든한 후원자인 그룹 차원의 지원이 사라지면 경쟁력이 추락하기 일쑤다.

NH투자증권의 시작도 부잣집 아들이었다. LG증권으로 시작해 그룹사 물량만으로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일부 젊은 직원들은 답답해했다. 더 모험적인 비즈니스를 해 큰 성과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없다’는 분위기가 이들을 압도했다.

상황이 급변한 건 2000년대 초반. LG증권은 LG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룹의 품을 떠나게 됐다. 정글 같은 시장에 홀로 던져졌다. 과거와 같은 위세를 유지할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2000년대 중반 우리금융에 인수된 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글에서 생존 능력을 갖춘 외부 인사들이 영입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경영진에 오르면서 NH투자증권(당시 우리투자증권)의 DNA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존재감 없던 IB 부문이 급성장했다. 경쟁 없는 인하우스 사업이 아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먹잇감을 획득해오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WM사업에 IB라는 무기까지 장착한 것이다.

야생에서 사는 법을 체득한 NH투자증권은 꾸준한 성장을 거듭했다. 성장에 목말랐던 직원들은 이런 변화를 반겼다. 윤병운 현 NH투자증권 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하지만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주인이 우리금융에서 농협으로 바뀐 것. 농협과 옛 LG그룹의 문화 차이는 컸다. 다행히 주인이 두번 바뀌는 동안에도 오랜 기간 이어져온 인화와 절제의 DNA는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여기에 홀로서기 과정에서 체득한 전투적 DNA가 더해져 NH투자증권은 농협 내에서 ‘알토란’ 같은 회사로 자리 잡았다. 경영의 연속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위기도 있었다. ‘옵티머스 사건’이 최근 5년 새 가장 큰 위기였다. 사기에 가까운 펀드를 판매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힌 사건이다. NH투자증권은 과감하게 대응했다.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펀드 판매사의 문제가 아니라 운용사와 펀드 관리회사의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켜 잇따른 소송에서 승리했다. 옵티머스 사건으로 상처 난 회사의 평판을 정면돌파를 통해 만회한 것이다.

최근 IB담당 임원이 미공개정보를 활용한 사건도 있었다. 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건이라고들 했다. NH투자증권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사건을 파악하자마자 해당 임원을 직무에서 배제시켰다. 이어 전 임원의 주식투자를 금지하는 강력한 대책을 내놨다. 현재 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강력한 보완책을 내놓는 위기관리의 정석을 따른 결과다.

전통적인 강점인 WM비즈니스, IB시장에서의 존재감, 위기관리 능력, 상식적이지만 전투력을 갖춘 기업문화. 이를 기반으로 NH투자증권은 다음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새롭게 열리는 IMA 시장이다. 높은 신용등급과 IB사업부의 탁월한 능력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한 중소·중견기업들의 도약대가 되겠다는 그들의 포부다. 한국형 ‘진짜 IB’가 그 지향점이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NH투자증권이 IMA 시장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미 1·2호 사업자로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선정된 가운데 NH투자증권은 지난 9월 말 뒤늦게 IMA 인가를 신청했다. 후발주자이지만 스스로 “가장 준비된 플레이어”라고 말한다. 뒤늦은 출발, 자신감의 근거는그 배경에는 은행계 금융지주 산하 증권사가 갖고 있는 높은 신용등급과 지배구조의 안정성, 그리고 ‘IB 강자’로서 압도적인 기업금융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모두 은행계가 아니다. 따라서 은행계 증권사가 시장에 하나 있으면 시장의 안정성과 완결성이 높아진다는 게 NH투자증권의 논리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모두 비(非)은행계다. NH투자증권이 강조하는 논리는 여기에 있다. 은행계 증권사가 한 곳은 있어야 IMA 생태계의 안정성과 완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은행계’라는 이유만으로 자신감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정통 IB맨’인 윤병운 사장은 오랜 시간 기업의 흥망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가 가장 아쉬워한 지점은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이 스케일업 단계에 이르러 필요한 자본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다는 구조적 문제였다. 스타트업은 많지만 중견·대형 기업으로 넘어가는 사례가 드문 이유가 바로 자본 공급의 공백에 있었기 때문이다. 윤 사장은 이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NH투자증권이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주사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단기간에 대규모 자본 확충을 이뤄낸 이유이기도 하다. IMA 시대 예열? “국가전략산업, 딥테크, 중소기업 스케일업 등 한국 경제의 성장 축에 적극 투자하겠습니다.” 지난 11월 25일 윤병운 사장은 모험자본 3150억원 투입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가 본격 가동되기 전 집행한 선제 조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혁신 산업을 포함해 민간 자본이 기피하는 바이오·VC 등에 책임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IMA 인가가 나면 모험자본의 규모는 더 커진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발행어음과 IMA를 합쳐 자기자본의 최대 300%까지 조달할 수 있고 그중 25%를 의무적으로 모험자본에 투입해야 한다. NH가 3150억원을 먼저 집행한 것도 사실상 ‘IMA 시대’를 전제로 한 예열에 가깝다.

NH투자증권의 IMA 도전은 지난 7월에야 공식 발표됐다. 6500억원 유상증자를 결의해 자본시장법상 요건인 자기자본 8조원을 맞췄다. 일찌감치 IMA 도전장을 낸 다른 사업자와 비교하면 뒤늦은 결정이었다. 배당을 많이해 자기자본을 빠르게 쌓을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제약이었다. 금융당국의 IMA TF(태스크포스)팀이 이미 꾸려진 상황에서 ‘막판에 숟가락을 얹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윤 사장은 “더 늦으면 기회를 놓친다”고 판단했다. 올해 인가를 받지 못하면 사실상 2027년 말까지 기회가 없다. 이미 시장 판도가 굳어 있을 수밖에 없다. 윤 사장은 NH금융지주·중앙회·금융당국을 직접 설득했다. NH투자증권이야말로 IMA에 가장 준비된 플레이어라는 메시지를 밀어붙였다.

그가 제시한 NH의 강점은 두 가지다. 은행계 금융지주 산하 증권사로서의 ‘안정성’과 전통의 IB 강자로서의 ‘기업금융 체력’이다. 원금 보장에 운용 수익이 더해진 IMA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 원금 보장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신용도가 뒷받침돼야 하고 조달한 자금을 생산적 자본으로 연결하려면 실제 기업을 상대해본 IB의 실전 역량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은행계 금융지주 산하 증권사라는 점은 NH투자증권의 가장 큰 기반이다. IMA는 원금을 보장해야 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누가 더 안전한가”, “누가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는가”가 승부를 가른다. 높은 신용등급과 안정적인 지배구조는 곧 경쟁력이다. NH투자증권의 신용등급은 ‘AA+’로 비은행계 증권사 대비 우위를 갖는다.

하지만 안정성만으로는 IMA가 굴러가지 않는다. 증권사는 발행어음과 IMA를 합산해 자기자본의 최대 3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이 운용자산의 70% 이상을 기업금융 관련 자산으로 채워야 한다. 결국 어떤 기업금융 딜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서 수익성이 갈린다. NH 백년대계 열 전략무기윤 사장이 IMA에 승부를 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통 IB맨으로 불리는 윤 사장은 NH의 IB 역사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전신인 LG증권 시절부터 굵직한 딜을 맡으며 성장했고 회사의 기업금융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는 2011년 LG전자 1조원 유상증자 딜을 담당했다. LG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지 10년이 지나던 때였다. 1조원 규모 유상증자가 전례 없던 시절. 회사 내에는 “실패하면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증자에 참여할 회사를 다 모으지 못하면 그 물량을 다 NH가 떠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윤사장은 수십 차례 회의를 거듭하며 경영진을 설득했다. 막판에는 사표를 들고 갔다. “저 자신 있습니다. 안 되면 나가겠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단독 주관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시장의 예상을 뒤집었다. 구주주 청약률 97.77%, 일반공모 청약 4조원 이상. 이 거래는 NH투자증권이 이후 대부분의 ‘빅딜’에 참여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됐고 주요 발행사들과 신뢰를 쌓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윤 사장은 “우리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딜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NH투자증권은 IPO·M&A·인수금융 등에서 RM(기업금융전담역) 조직을 육성하며 ‘딜 구조화 전문하우스’로 체질을 바꿨다. SK바이오팜 IPO, 하이브 투트랙 유상증자, 오스템임플란트 패키지딜, 시장 최초의 공개매수-상장폐지 연계 구조 등은 ‘IB 강호’란 평가를 굳혔다.

2024년 그는 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두 번째 도약을 준비했다. 리테일과 IB 모두 잡아야 승기를 쥘 수 있던 상황에서 그는 과감히 ‘IB맨’ 타이틀을 버렸다. 회사의 비즈니스 구조를 ‘4·3·2·1 법칙’으로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WM(자산관리)에서 4, IB에서 3, 운용 부문에서 2, 홀세일 및 기타 부문에서 1.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통해 장기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IMA다. IMA는 증권사 입장에서 ‘대박 상품’은 아니다. 원금 보장 구조와 성공보수 체계로 단기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는 신뢰가 높다. IMA로 유입된 고객은 WM과 IB를 잇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리테일과 IB 양축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다. 윤 사장은 지금을 2011년 1조원 딜과 같은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는 IB가 아니라 IMA라는 플랫폼이 NH의 도약을 결정지을 차례라는 구상이다. 증권가의 한국콜마?여기엔 윤 사장의 마지막 꿈도 녹아 있다. 정통 IB맨으로 20년 넘게 기업을 상대해 온 그는 한국 자본시장의 뼈아픈 지점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봐왔다. 벤처·스타트업 단계에서는 액셀러레이터와 VC가 자금을 공급하지만 더 큰 도약을 위한 스케돋보기일업 자본이 끊기는 구간, 즉 ‘미싱 미들(missing middle)’이 늘 문제였다.

한국 기업들은 충분히 커지지 못한 상태에서 상장 문턱에 서고 낮은 밸류에이션, 제한된 투자 여력이라는 ‘반쪽짜리 성장’을 반복했다. 윤 사장은 이 구조적 결핍이 산업의 체급을 키워야 할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막고 있다고 봤다.

마침 정부가 추진하는 IMA의 핵심 논리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IMA 운용자금의 25%를 혁신·벤처기업에 의무적으로 배분하는 구조다. 국내에서는 드문 ‘스케일업 자본’이 처음으로 제도권 통로를 갖게 되는 셈이다.

윤 사장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연임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IMA 인가 역시 임기 안에 결론이 날지 장담하기 어렵다. 설령 인가를 받는다 해도 단기 실적과 거리가 있다. WM이 성장하고 모험자본이 기업 성장과 투자자의 수익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자리 잡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윤 사장 개인의 임기와는 무관하게 긴 타임라인 위에 놓인 프로젝트다.

그럼에도 그는 IMA가 NH투자증권이 맡아야 할 역할이라고 본다. 마치 K-화장품 산업에서 한국콜마·코스맥스 같은 ODM이 인디 브랜드를 키워내 산업 외연을 넓혀온 것처럼 중소·중견기업이 ‘충분히 큰 상태’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자본을 공급하는 ‘진짜 IB’의 역할이다. 에이피알, 구다이글로벌 등 한때 인디 브랜드에 불과했던 기업들은 ODM의 자본과 생산 인프라를 기반으로 조(兆) 단위 기업가치로 성장했다. 당장 매출이 크지 않더라도 수백 개 브랜드에 기회를 열어주는 구조가 산업 전체의 체급을 키워온 것이다.

윤 사장이 그리는 IMA의 미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NH투자증권은 딜 메이커를 넘어 ‘생산적 금융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대한민국의 진짜 IB’로 회사가 자리매김하길 계획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이 준비하는 다음 스테이지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